초록의 물비늘이 마지막으로 빛나는 때 소만(小滿) 지나 넘치는 것은 어둠뿐이라는 듯 이제 무성해지는 일밖에 남지 않았다는 듯 나무는 그늘로만 이야기하고 그 어둔 말 아래 맥문동이 보랏빛 꽃을 피우고
소만(小滿) 지나면 들리는 소리 초록이 물비린내 풍기며 중얼거리는 소리 누가 내 발등을 덮어다오 이 부끄러운 발등을 좀 덮어다오
‘만물이 점차 생장하여 가득 찬다’는 뜻의 소만은 24절기 중 여덟 번째다. 5월 21일께이니 봄의 끝, 여름의 시작이다. 이제 사흘 뒤가 가을의 끝, 겨울의 시작인 소설(小雪), 바로 소만의 극이다. 초록이 우거지다 무거워지다 무너져버린, 그래서 어둡게 비어가는 가슴을 찰랑찰랑 초록 웅숭깊은 나희덕의 ‘소만’은 싱그럽게 채워준다.
소만은 꽉 채우는 게 아니다. 꽉 차면 비린내, 혹은 누린내를 풍긴다네. ‘이만하면’이나 ‘꼭 이만하게는’은 작을 소(小)자에 대응하는 절묘한 부사어.
시인이 초록에 기대 보여주는, ‘이만하면 세상을 채울 만하다 싶은/꼭 그런 때’를 놓치지 않았으면! 느낄 수 있었으면!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