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30>여름의 수반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1월 21일 03시 00분


여름의 수반
―이용임 (1976∼ )


서성이는 육체
나리우는 육체
맴도는 육체

묽어지는 육체
붉어지는 육체
환하게 사라지는 육체

입김으로 흩어지는 육체
한 점으로 떠 있는 육체
가장자리가 흔들리는 육체

바람을 가둔 육체
거울이 되는 육체
눈 위에 손을 올리고 기다리는 육체
그림자에 빠져 익사하는 육체

꽃잎을 얹은 육체
푸른 얼굴의 육체
가둔 향기에 빙빙 돌면서
말라가는 육체

‘육체’라니 사람의 몸이렷다. ‘꽃잎을 얹’었다 하니 사람 중에서도 여인이렷다. 꽃을 의인화한 것일 수도 있고, 사람을 꽃에 비유한 것일 수도 있는 시다.

여름날의 바다 풍경인 듯한데, 젊거나 늙었거나, 풍만하거나 호리호리하거나, 농염하거나 청초한 여인들이 벌거벗은 채 움직이는 온천장이라 해도 좋겠다. 장미, 백합, 붓꽃, 칸나, 안개꽃…. 탐스러운 꽃들이 난만하게 흐드러진 수반. 꽃들의 향연을 리드미컬하게 읊었다. 그런데 그 정조(情調)가 어딘지 비애스럽다.

사람이건 꽃이건 모든 육체는 결국 말라간다. ‘육체는 슬프다, 아아!’(말라르메)

생의 한바다에서, 갇힌 느낌과 갈증으로 목을 길게 늘이는 시인이여.

황인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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