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세상/오상우]체중 양극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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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1월 21일 03시 00분


오상우 동국대일산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오상우 동국대일산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오래전에 보았던 신문의 카툰 하나가 기억이 난다. 배가 불룩하게 나온 비만한 체형의 기업체 사장이 고깃집 앞에서 거만한 모습으로 이쑤시개를 꽂고 서 있는 카툰이었다.

이렇게 과거에는 부유한 인물들을 묘사할 때에 비만한 체형으로 그리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요즘에 이런 식의 카툰을 게재한다면 그 신문은 현실을 모르는 무능한 신문으로 인식될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지난 세월 동안 우리의 체형이 많이 변해 비만의 문제가 이제 고소득층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 전체의 문제로 발전했기 때문이다.

필자의 연구진이 지난 12년간의 국내 인구의 체중 변화를 살펴본 적이 있다. 연구 결과 최근 들어 일반적인 비만인구는 더이상 늘지 않고, 아주 심각한 고도비만 환자들이 급속히 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반면에 그 반대편에 있는 저체중 인구도 늘고 있었는데, 특히 젊은 여성을 중심으로 급속히 늘고 있었다. 즉 최근 들어 국내에서 일반적인 비만보다는 고도비만과 저체중이라는 양극단의 인구가 급속히 늘고 있는 흥미로운 현상이 생긴 것이다.

왜 이런 변화가 일어났는지 그 속을 들여다보면 아주 재미있다.

먼저 고도비만이 늘어나는 이유를 살펴보자. 비만의 원인이 되는 다양한 패스트푸드가 국내에 보급되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후반부터이다. 또한 자동차를 비롯한 교통수단, 컴퓨터, 게임기 등의 비만 유발 요인들이 우리 주변에 확산되기 시작한 시기도 바로 이 무렵부터였다. 바로 이 시기에 청소년이었던 사람들이 이제 성인이 된 것이다. 다시 말해 비만 유발 유전자를 가진 청소년들이 이 시기부터 이미 비만 유발 식습관과 생활습관에 노출되었다가 그대로 성인이 되면서 고도비만 인구가 늘어난 것이다.

반면에 여성의 경우에는 저체중 인구가 늘어났는데 이는 우리 사회의 잘못된 인식과 편견에 기인했을 가능성이 높다. 한 조사에서 비만한 사람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느냐는 질문에 일반인들이 가장 많이 응답했던 것은 “자기관리를 못해서 저렇게 되었다”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고도비만으로 갈수록 유전적인 요인과 아울러 어쩔 수 없는 주변의 환경적인 요인에 의해서 비만이 될 가능성이 높다.

비만 유발 유전자를 가졌다고 해서 직장인이 회식에 빠질 수 없고, 밤늦게까지 맞벌이해야 하는 부모의 자녀가 건강식을 골고루 챙겨서 먹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이지 않은가? 이렇게 고도비만으로 갈수록 자기관리만으로는 해결이 안 되는 병적인 상황일 가능성이 높은데, 이를 개인의 잘못으로만 치부하는 편견이 우리 주변에 만연한 것으로 조사된 것이다.

게다가 연구 결과 마른 체형을 가진 여성들이 더 쉽게 직장을 가질 수 있고 사회활동을 적극적으로 하면서 소득수준까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게 마른 체형을 선호할 수밖에 없는 사회적 분위기와 편견이 존재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비만 유전자의 영향에서 자유로운 사람들이 필요 이상으로 과도한 체중 관리를 함으로써 국내에서 저체중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의학적으로 저체중과 고도비만 모두가 건강에 해롭다. 다양한 질병에 걸릴 위험뿐만 아니라 사망의 위험까지도 높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스트레스와 우울증 등의 정신적인 문제를 유발하고 심각하게 삶의 질까지 떨어뜨린다. 이러한 체중의 양극화 현상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바로 옆에 다가와 우리의 건강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우선적으로 이러한 현상의 근간에 놓여 있으며 가장 큰 장벽이기도 한 체중에 대한 우리의 그릇된 인식과 편견부터 바꾸어 나가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오상우 동국대일산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체중#비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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