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지인들에게 물어봤을 때 민주통합당 대선후보 문재인, 무소속 후보 안철수 중에 문재인이 야권 단일후보로 선택될 것이라고 점치는 사람이 더 많았다. 그렇게 꼽은 이유는 두 가지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문재인이 눈에 띄게 상승 흐름을 타고 있다는 것과 문재인 뒤에 버티고 있는 조직력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여론조사 룰 협상 최대한 버텨
문재인의 상승세는 매일처럼 쏟아지는 여론조사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러면 조직력은? 민주당은 전체 당원이 210만 명이다. 이 가운데 매월 1000원 이상의 당비를 내는 권리당원은 약 17만 명으로, 이들은 충성도가 강하다고 봐야 한다. 민주당원 중 상당수는 문재인 지지자로 봐야 할 것이다.
문재인을 받치는 더 큰 힘은 친노(親盧) 성향의 조직들이다.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만드는 데 기여한 노사모, 대표적인 친노 인사인 문성근이 만든 ‘백만송이 국민의 명령’, 정봉주 전 민주당 의원의 팬클럽인 미권스. 이들은 한명숙과 이해찬을 민주당 대표로 세우고, 문재인을 민주당 대선후보로 만든 일등공신이나 다름없다. 모두 십여만씩의 회원을 두고 있다. 야권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세계를 주도한다. 문재인 뒤에는 또 수십만의 팔로어를 거느린 트위터 명사(名士)도 많다.
조직력이 여론조사에는 어느 정도나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여론조사 전문가에게 물어보니 확률적으로는 그다지 높지 않다고 했다. 표본이 2000명이면 전체 유권자 4000만 명 중에 표본에 속할 확률은 2만분의 1이다. 그러나 여론조사 응답률이 20% 정도니 2000명의 표본을 추출해내려면 약 1만 명에게 물어봐야 한다. 전체 유권자 중에서 1만 명에 속할 확률은 4000분의 1로 높아진다. 누군가가 400만 명의 마음을 움직일 수만 있다면 그중 1000명 정도는 여론조사 응답자에 포함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안철수 캠프의 공동선대본부장인 박선숙이 그젯밤 긴급 기자회견을 했다. 신문과 방송들은 모두 여론조사 룰에 관한 얘기만 다뤘지만 그의 발언엔 의미심장한 내용이 들어 있다. “조사가 진행되는 동안 e메일 문자메시지 등을 통해 조직적으로 착신 전환을 유도하는 등 민심을 왜곡하는 선거 부정행위는 절대 용납될 수 없다.” 문재인 쪽의 조직력을 우려하고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며칠 전 야권 인사한테서 안철수의 민주당 입당 선언 가능성을 전해 들었다. 그 때문에 문재인 쪽에서 걱정이 많다고 했다. 민주당 지지자 중엔 안철수에게 마음이 있으면서도 그가 민주당 꼬리표를 달지 않아 문재인을 지지하는 사람도 많다. 안철수의 민주당행(行)은 그런 사람들을 동요시킬 수 있다. 특히 단일화 국면에서 약발이 먹힐 소지가 없지 않다.
권력의지 놀랍다는 평 들어
이틀 뒤 안철수가 “야권 단일후보로 선택된다면 민주당을 중심으로 다양한 부분의 국민적 지지를 모아서 선거를 치르겠다”고 밝혔다. 물론 민주당 입당을 정식 선언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마음이 간절한 사람에겐 그렇게 들릴 수도 있다. 민주당원들의 마음을 흔드는 것으로 문재인의 조직력에 맞서기 위한 안철수의 고육책일 수도 있었다.
근래 많은 사람이 “안철수가 보기와는 다르다”는 말을 자주했다. 문재인 쪽에서는 “우리가 안철수를 너무 몰랐다”는 소리도 나왔다. 단일화 협상 과정에서 표출된 안철수의 권력의지가 박원순에게 서울시장 후보 자리를 선뜻 양보할 때 느꼈던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얘기였다. 내가 보기에도 그랬다.
그러나 안철수는 문재인과의 여론조사 룰 협상이 한 치의 진전 없이 교착상태에 빠지자 어젯밤 갑자기 후보직을 던졌다. 원래 권력의지가 없었던 것인가, 아니면 이번에도 ‘아름다운 양보’인가. 그것도 아니면 더이상 버티기가 어려워 자포자기로 내려놓은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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