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대선보도 검증위원회는 22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동아미디어센터 6층 회의실에서 세 번째 회의를 열었다. 대선보도
검증위원회는 다음 달 대선을 앞두고 관련 보도의 불편부당(不偏不黨)한 공정성과 객관성을 높이기 위해 외부 인사들의 가감 없는
평가와 조언을 듣고 지면에 반영하자는 취지에서 9월 도입했다. 국내 언론사 최초의 시도다.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을 지낸 유지담 전
대법관이 위원장으로서 회의를 진행했으며 김대환 인하대 경제학부 교수(63), 이내영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52), 김은미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48), 김성진 법무법인 한결 변호사(39), 김슬기 희곡작가(26)가 검증위원으로 참석했다. 위원들의
이해를 돕고 필요한 설명을 하기 위해 박제균 동아일보 정치부장도 참석했다. 위원들은 2시간 동안 지난달 두 번째 회의 후
동아일보가 보도해온 대선 관련 기사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제시했다.
▽유지담 위원장=그동안의 동아일보 보도를 보면 다른 신문들에 비해 지킬 건 지키면서 중도·중간에 서 있는 사람의 기분이 나빠지지 않게 하는 보도라고 총평할 수 있겠다. 그런데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와 무소속 안철수 후보의 단일화 TV토론에 대해 평가를 한 보도(22일자 A5면 ‘전문가 10인에 물으니… 文우세6:安우세3:무승부1’)는 꼭 바람직하지만은 않은 것 같다. 이렇게 어느 쪽이 우세한지 판가름하는 게 중요한 일인가.
▽김대환 교수=보도가 ‘누가 선거에서 이길 것인가’에만 포커스를 맞춘 것 아닌가. 그것보다는 단일화를 하면 정책이 비슷하거나 같아야 하는데 토론을 보면 분명 차이가 난 점이 있었다. 단일화를 위한 정책적 유사점과 배치점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포커스를 맞춰야 했다고 생각한다.
▽이내영 교수=어느 후보가 토론을 잘했는지 평가하는 것도 중요하며 동아일보가 의도적인 프레이밍을 한 것 같진 않다. 그런데 문, 안 후보의 토론이었지만, 그 자리엔 없는 가상의 토론자인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가 승자 같았다. 누가 토론을 잘했느냐에 관계없이 이 기사에서 빠진 질문은 단일화 협상과 이런 토론이 정말 필요한가, 왜 단일화를 하는가, 단일화를 하면 새로운 정치가 열리겠는가에 대한 것이다. 두 후보 경쟁에만 정신이 팔려 큰 대선의 게임을 소홀히 한 게 아닌지….
▽박제균 부장=대개 TV토론 후 평가하는 보도는 미국에서 많이 한다. 버락 오바마와 밋 롬니의 토론이 끝나면 바로 국민여론을 물어보거나 전문가들이 평가에 들어간다. TV토론은 국민들이 볼 텐데 이걸 그대로 지면에서 중계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10명의 전문가들에게 미리 던진 질문을 TV토론이 끝나자마자 오전 1시에 취합해서 기사화했다. 이 기사로 다른 신문들과 차별화를 했고 상당히 화제가 됐다. 독자의 관심을 무시할 수 없는 측면이 있었다.
▽김성진 변호사=매일 1시간 가까이 신문을 보면서 동아일보 보도가 어느 후보 쪽으로 기울었는지 집어내려고 노력했는데 특별한 코멘트를 달 만한 때가 없는 날이 많았다. 그만큼 신경을 쓰고 노력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청년실업과 일자리에 대한 기획기사(14일자 A1·4·5면 ‘대선후보 빅3, 본보 일자리정책 질문에 서면 답변’)에서 일목요연하게 정책적 쟁점과 차이를 볼 수 있었다. 반면 10월 15일자 A1면에 안 후보가 재벌개혁 공약을 발표한 기사를 실으면서 제목을 “전경련 ‘경제위기에 대기업 때리기 공약 안 돼’”로 달았다. 박 후보가 경제공약을 발표한 11월 17일자 A1면 제목은 “朴 ‘재벌개혁보다 공정거래’ 경제민주화 공약 발표”로 돼 있다. 통상적으로 공약이 발표되면 정책의 주요 내용을 제목으로 삼는데 안 후보의 경우 그에 반발하는 재계 입장을 제목으로 단 건 이해하기 어렵다. 또 같은 달 13일자 A1면 “‘설레발’ 설익은 공약 남발 뒤 ‘오리발’ 문제되면 딱 잡아떼”라는 기사엔 문, 안 후보의 말 바꾸기 사례만 나와 있고 박 후보에 대한 사례는 없다. 그러면서 A3면에 이어진 기사에 새누리당 이정현 공보단장의 사례가 나올 뿐이다.
▽박 부장=문 후보와 안 후보는 본인이 직접 말을 바꾼 게 있었는데 박 후보는 본인이 말을 바꾼 것을 찾아내기 힘들었다. 대선후보가 아닌 이 단장을 맨 앞 케이스로 앞세울 순 없어서 문, 안 후보 사례를 앞에 쓴 것이다.
▽김은미 교수=후보들 간의 정책공약 기획들이 많아서 좋았다. 이번 선거에선 후보들의 정책 차이도 있긴 하지만 그 차이가 잘 드러나지 않아서 문제다. 이 기회에 공약들을 제대로 바라보고 해결해야 하는 게 무엇인지를 파헤쳐 주는 기사가 있었으면 좋겠다. 또 세 후보 간의 정책 차이를 제시하는 것도 좋지만 그 차이가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그 차이를 어떻게 평가해야 되는지 정보를 좀더 받았으면 좋겠다. 또 후보 단일화 국면에서 ‘룰의 전쟁 시작’ 등 스트레이트성 기사들의 말미에 박 후보 측의 비판적 코멘트가 항상 들어가면서 마무리가 된다. 그렇게 되면 단일화 전체 내용에 대해 부정적인 인상을 줄 수 있다.
▽박 부장=야권의 문, 안 후보는 두 사람이고 새누리당 박 후보는 한 사람이다. 균형을 맞추려고 하는데 단일화 과정에서 점점 흥미로운 사건이 많아져 기사 분량의 차이가 커지게 된다. 그래서 균형을 맞추는 차원이고 기사 작법이기도 하다. 특정 후보에 기울어지는 보도를 할 의도는 없다.
▽김슬기 작가=동아일보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기사가 너무 단일화 싸움에만 치우치는 것 같아 허무하다는 느낌이 든다. 젊은 사람 입장에선 어른들이 단일화 싸움을 구경하는데, 밖에서 그 어른들을 구경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13일자 ‘나는 유권자다’(A4면) 기획에서 문화·체육계 인사들의 대선에 대한 목소리를 들어볼 수 있어서 좋았다. 배우 황정민 씨가 회사 법인카드를 회식자리에 쓰기보단 공연을 보는 데 쓸 수 있도록 해 달라는 등의 사례가 눈에 띄었다. 연극협회 소설가협회 문인협회 등 단체가 공통적으로 원하는 공약이나 바라는 점과 같은 목소리를 들어보면 재미있지 않을까. 기사의 사소한 표현들을 독자들이 여과 없이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에 하나하나가 중요하다. 박 후보를 묘사하면서 “부산국제영화제, 자갈치시장을 찾는 등 접촉면을 늘렸고 사인 요청에 ‘일일이’ 응했다”는 표현처럼 호의적인 문장이 많았다. 문, 안 후보에 대해 이런 문장이 있는지 찾아봤지만 잘 없었다.
▽유 위원장=10월 25일자 A1·2·3면 ‘네거티브에 빠진 대선-유권자는 정책대결을 보고 싶다’ 등 네거티브 선거전에 대한 자세한 보도는 ‘네거티브는 큰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다’는 점을 알려주는 기획으로 아주 좋은 보도로 느껴졌다.
▽김대환 교수=정치혁신 문제는 기득권 정치세력과 그것을 깨고자 하는 노력 가운데 굉장히 중요한 논쟁점이다. 그런데 정치혁신의 문제는 동아일보를 포함해 모든 언론이 가볍게 지나가 버렸다. 정치혁신 제안에 대해 기득권 정치세력이 “말도 안 되는 이슈고 철부지 같다”는 반격이 있었는데 근본적으로 한국 정치의 혁신안이 무엇인지 검토할 필요가 있다. 아이템 나열과 단순비교가 아니라 심층적으로 실현 가능성과 논리적 일관성, 현실적 정합성을 짚어줘야 한다.
▽이 교수=정책검증을 하더라도 차이를 부각시켜야 한다. 캠프의 교수들이 만드는 비슷한 공약들 말고 후보가 직접 말한 정책을 다뤄야 한다. 또 단순히 캠프의 공약집을 분석하는 기사가 아니라 좀 더 구체적인 차이를 부각시키는 방식의 보도가 가능하지 않을까. 독자들의 깜깜이 선거를 방지할 수 있고 누가 대통령이 되는 게 한국의 방향이 달라지는지, 최종 선택을 하는 데 좋은 서비스가 될 수 있다. 동시에 후보 간에 합의점을 갖고 있는 공약이라면 어디까지 합의했다는 점도 보도를 했으면 한다. 누가 대통령이 돼도 그런 컨센서스가 있으면 그 기반을 갖고 국정을 운영할 수 있다.
▽김 변호사=11월 15일자 A1면 “文-安 단일화 ‘불신의 늪’에 빠지다”, 21일자 A1면 “‘감동 있는 단일화’ 외칠 땐 언제고…” 등의 기사는 단일화와 관련해 문학적인 제목을 달았는데 다른 언론의 보도에 비해 ‘잘 안돼서 좋다’는 비꼬는 듯한 느낌이 든다. 박 후보와 일치하는 입장이며 단일화 이후 이들에 대한 득표력을 떨어뜨리는 의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교수=야권 내에서도 단일화가 기대했던 것처럼 시너지효과가 나지 않고 아름답기는커녕 어글리하다는 의견이 많다. 그런 제목이 좋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팩트는 팩트대로 봤으면 좋겠다.
▽유 위원장=‘감동 없는 단일화’라고 하는 건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감동 없는 드라마를 감동 없다고 써야지 있다고 써야 되나. 그런 걸 트집하는 건 한쪽에 치우친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박 부장=단일화에 대한 기대를 갖고 있었던 사람들이 참 많았고 저희도 어떻게 될지 궁금해서 쭉 지켜보고 있다. ‘아름다운 단일화를 한다더니 서로 공격하고 욕하고, 이런 건 아니지 않나’ 하는 비판의식을 담은 것이다. 진보좌파 성향 신문에서도 비판적인 1면 제목을 뽑은 건 어떻게 봐야 할까.
▽유 위원장=정치는 사람이 하는 것이다. 결국 사람을 제대로 선출해야 하는데, 정치를 미워하면서도 또 같은 사람에게 찍어주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번에야말로 반성의 계기로 삼아 정확한 판단으로 투표해야 한다. 동아일보 보도가 이런 국민들의 판단을 잘 이끌어 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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