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겨우 존재하는 것들이 있다 쑥국 먹고 체해 죽은 귀신 울음의 쑥국새, 농약을 이기며 물 위를 걸어가는 소금쟁이, 주인을 들에 방목하고 저 홀로 늙어가는 흑염소, 사향 냄새로 들풀을 물들이며 날아오는 사향제비나비, 빈 돼지우리 옆에 피어난 달개비꽃, 삶의 얇은 물결 위에 아슬아슬 떠 있는 것들, 그들이 그렇게 겨우 존재할 때까지, 난 뭘 했을까 바람이 멎을 때 감기는 눈과 비 맞는 사철나무의 중얼거림, 수염난 옥수수의 너털웃음을 그들은 만졌을지 모른다 겨우 존재하기 위한 안간힘으로, 달개비꽃 진저리치며 달빛을 털 때 열리는 티끌 우주의 문, 그 입구는 너무도 투명하여 난 겨우 바라만 볼 뿐이다 아, 겨우 존재하는 슬픔, 보이지 않는 그 목숨들의 건반을 딩동딩동 두드릴 수만 있다면! 난 그들을 경배한다
존재와 비존재의 경계에 있는, 바스러질 듯 연약한 것들에 대한 애정과 연민을 담은 시다. 우주는, 세계는, 중요한 것들로만 이루어진 게 아니다. 세상을 두루 이루는 건 아주 작은, 사소한 것들이다. 그것들은 찬찬히, 자세히 보지 않으면 눈에 띄지 않는다. 시인의 ‘마음의 망막에 맺힌’(유하 시집 ‘세상의 모든 저녁’ 자서에서), ‘겨우 존재하는’ 것들의 모습이, 그것을 그리는 시인의 마음이 독자 가슴의 건반을 딩동딩동 두드린다.
어쩌면 이들 역시 겨우 존재하는지도 모르겠는, 고아, 홀몸노인, 노숙인 들의 안부…어떨지, 문득 그들 겨울의 애절(哀切)이 사무친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