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여름, 여수엑스포에 가기 위해 차량을 이용한 사람이라면 임시 개통한 이순신대교를 건너봤을 것이다. 국내 최장 현수교(懸垂橋)인 이 다리는 다리 기둥 간 거리가 1534m에 이른다. 적당히 늘어지게 친 케이블이 본체를 구성하는 현수교는 가는 케이블을 여러 가닥으로 꼬아 무거운 다리를 지탱한다. 즉, 힘을 분산시켜 안정성을 높인 것이다. 이 같은 원리는 우리 전력시스템에도 적용할 수 있다. 여러 가지 분산전원을 이용한다면 거대한 전력 수요에도 전력 구조를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전체 전력 소비의 30% 이상이 수도권에 집중돼 있지만 정작 수도권의 전력발전설비 용량은 국내 전체 설비의 10%도 되지 않는다. 수도권에서 필요로 하는 전기를 고리, 울진, 삼천포, 태안 등 해안가의 발전소로부터 초고압 송전선로를 통해 공급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구조는 전력시스템의 안정성을 저해할 뿐만 아니라 철탑과 선로 건설로 환경을 파괴해 막대한 사회적 손실을 야기할 수 있다.
전기 냉난방기기의 사용 증가도 문제다. 특히 과거 난방기기로 많이 쓰던 가스나 등유 난로 대신 최근에는 상대적으로 요금이 싼 전기를 기반으로 한 난방기기 사용이 급증해 겨울철 전력 부족 사태가 심각하다.
이러한 현실을 반영해 정부는 새로운 발전소 건설을 계획하고 있다. 하지만 이미 웬만한 용지에는 발전소가 건설돼 추가 건설에 필요한 땅이 부족하고, 환경오염을 우려한 환경단체의 거센 반대로 적기에 전력공급설비를 건설하지 못하고 있다.
이 같은 문제를 어떻게 하면 해결할 수 있을까. 필자는 그 해법으로 전력의 공급과 소비가 원거리가 아닌 근거리에서 이루어지는 분산시스템을 활용할 것을 제안한다.
사실 우리는 이미 수많은 분산전원을 가지고 있다. 전력 소비가 많은 대도시와 도심지역에는 열병합발전소(520만 kW)가, 아파트 및 산업체에는 소형(자가) 열병합시스템(360만 kW)이 설치돼 있다. 이러한 열병합발전설비 용량은 우리나라 전체 설비의 11%를 차지하고 있으며 전력 피크 시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또 지산지소(地産地消)로 대규모 송전망도 필요하지 않다. 하지만 이러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열병합발전설비는 에너지가격의 왜곡으로 설비만 갖추어져 있을 뿐 실제로 가동되지 못하고 있다. 이와 함께 대규모 빌딩 등에는 원자력발전소 19기에 해당하는 비상발전기(1900만 kW)가 의무적으로 설치돼 있지만 이 역시 발전단가의 문제로 유휴상태인 채 먼지만 쌓이고 있다.
이러한 분산전원시스템을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각계각층의 다각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우선 정부는 열병합발전설비와 비상발전기를 가동해도 에너지가격 왜곡이 일어나지 않게 경제적으로 지원하는 정책을 도입해야 한다. 또 기존의 대규모 설비를 위주로 한 공급에서 소규모 분산시스템 중심으로 패러다임이 바뀌는 게 중요하다. 미래의 스마트 그리드(에너지 네트워크와 통신 네트워크가 합쳐진 지능형 전력망) 시대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분산전원을 주축으로 삼고 기존의 전력시스템을 대비용으로 활용하는 패러다임의 변화가 필요하다.
일찍이 충무공은 임진왜란에서 단생산사(團生散死),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명언을 남겼다. 하지만 우리의 전력시스템은 뭉치면 죽고 흩어져야 살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자. 현수교의 여러 가닥으로 꼬인 케이블이 탄탄하게 다리를 떠받치고 있는 것처럼 거미줄처럼 촘촘히 퍼진 분산전원은 아슬아슬하다고 느껴지는 우리의 전력시스템을 지탱해줄 일등공신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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