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여에 걸친 ‘안철수 소동(騷動)’이 막을 내렸다. 한 컴퓨터 과학자가 벌인 느닷없는 정치판 가출 소동의 결말은 허망하다 못해 안쓰럽기까지 하다. 대통령 선거 출마 여부를 두고 그는 얼마나 뜸을 들였는가. 마침내 출마를 선언하면서 끝까지 가겠다고 국민에게 약속하지 않았는가. 그런데 아무렇지도 않게 단일화에 나서는 것은 무슨 경우인가. 게다가 중도 사퇴라니.
안철수 정치는 한마디로 ‘무책임’
그가 벌인 정치 소동을 한 단어로 정리하면 ‘무책임’이다. 수십 년을 정치판에서 뒹굴어도 결코 쉽지 않은 것이 대통령 후보의 반열에 오르는 일이다. ‘컴퓨터 과학자 안철수’가 단숨에 대통령 문턱에 이를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남다른 배경과 경력이 내뿜는 이미지에 대한 국민의 신뢰 덕분이라 할 수 있다.
사람들은 의사 집안에서 태어나 서울대 의대를 나온 ‘엄친아’인 그를 보면서 지성인이며 귀족 같은 고상함을 느꼈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의사의 길을 포기하고 컴퓨터에 뛰어든 놀라운 반전에 매료되면서 그의 결단력에 감동했을 것이다. 반듯한 외모에 나긋나긋한 목소리를 가졌으면서도 할 말은 다하는 말솜씨를 보면서 친절함과 용기, 힘을 두루 갖춘 인물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사람들은 이러한 자질과 덕목을 갖춘 그가 새로운 정치 지도자가 되기에 부족함이 없다며 한국 정치사에 유례없는 벼락 신뢰와 기대를 보냈던 것이다.
대통령 선거에 반드시 입후보하겠다던 안 교수가 왜 단일화에 나섰으며 왜 갑자기 후보를 그만두었는지 정확한 배경과 이유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이든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스스로 자신의 정치 약속을 저버린 행태는 정치 지도자로서는 용납되기 어려운 ‘무책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기 때문이다.
정치는 물리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평생 매달린 주제였다. ‘상대성 원리’로 노벨상을 받았던 아인슈타인은 정치를 ‘주어진 조건 속에서 가능한 것을 성취하는 기술’이라고 인식했다. 그는 1900년대 초 몇십 년 동안 지적 자유, 인종차별 등 정치 현안에 관해 수많은 공개 편지를 쓰고 언론에 기고를 했으며 대중연설을 했다. 놀라운 과학의 업적에다 치열한 정치 활동으로 그는 요즘 인기 연예인이나 운동선수 못지않은 문화적 우상이었다. 세계 어디를 가든 사진을 찍는 파파라치들이 몰려들 정도로 이름을 떨쳤다.
독일 태생 유태인인 그는 이스라엘 건국을 위한 시온주의 운동의 지도자이기도 했다. 아인슈타인은 1952년 이스라엘 초대 대통령이던 하임 바이츠만이 사망하자 2대 대통령직을 제의받았다. 입헌군주제의 왕과 같은 의전 대통령이었으나 그는 나이가 너무 많다는 이유를 들면서 거절했다. 그러면서 “인간을 다룰 만한 타고난 능력도 경험도 없다”라고 말했다. 그것이 대통령 자리를 마다한 진정한 이유였다. 아인슈타인은 “정치는 그냥 나의 친구”일 뿐이라며 “정치는 물리학보다 더 어렵다”라고 말했다.
“정치는 물리학보다 어렵다”
평생 정치 활동에 많은 시간을 보내고 인기를 모았던 아인슈타인도 정작 현실 정치세계에 들어가는 것은 자제했다. 세기의 천재 물리학자였던 그가 물리학보다 어렵다고 한 것이 현실정치이다. 정치판이란 죽느냐, 사느냐의 게임이 벌어지는 곳. 정치인은 때로 자신이 잘 아는 것도 전혀 모르는 척해야 하며, 모르는 것도 통달한 것처럼 속여야 한다. 그러기에 아인슈타인은 대통령도 포기했던 것이다.
그런 정치판에 컴퓨터 전문가인 안 교수는 왜 뛰어들었으며 무엇을 원했던가? 세상에 나면서부터 늘 칭찬받고 부러움을 사던 세상 물정 모르는 일등 모범생의 우쭐함 때문인가? 텔레비전 연예 프로그램에서부터 시작된 주위의 유혹에 넘어간 어설픈 정치 욕망 때문인가?
새로운 정치, 좀 더 나은 국민의 삶을 위해 정치에 뛰어들었다는 얘기는 그가 아니라도 정치를 꿈꾸는 사람이면 누구나 하는 진부한 것이다.
정치인은 현실을 고민하는 사람이지 꿈꾸는 사람이 아니다. 과연 그의 진정한 정치적 동기는 무엇인가? 이렇게 허망하게 중도 사퇴할 정도면 안 교수가 남다른 정치 철학이나 신념, 의지를 가졌다고 보이지 않는다. 더구나 단순한 정치인이 아니라 대통령까지 원했던 사람이라면 어떤 어려움이나 협박과 유혹도 견디고 이겨 내야 하는 것이다.
러시아의 대문호(大文豪) 레오 톨스토이는 “천하의 영웅 나폴레옹 황제도 그의 통제가 미치지 않는, 거대한 사회 세력의 도구에 지나지 않았다”라고 했다. 나폴레옹은 시대 변화를 끌고 가는 영웅이 아니라, 시대의 변화를 꾀하는 세력의 인질이었다는 것이다. 자신의 의지 바깥에 존재하는 힘의 산물이었다. 프랑스 혁명 세력의 정치적 도구였다는 것이 톨스토이의 인식이다.
톨스토이의 말을 빌리자면 안 교수도 시대의 변화를 꾀하는 어떤 세력의 인질이고 도구가 아닐까? 고도의 정치 가공술을 가진 특정 세력이 모처럼 만에 나타난 이미지 만점의 인물을 가지고 만든 정치 창작물이 아닐까? 그의 주위에 몰려든 인물들이나 짧은 시일 내에 대단히 조직적으로 정치 이미지를 구축해 가던 과정, 단일화 협상 과정 등을 보면 개연성은 충분하다.
안 교수도 그러한 세력의 의도를 꿰뚫고, 그것을 역이용하기 위한 영리한 정치게임을 벌였을 수 있다. 하지만 역부족이었다. 산전수전 겪은 나폴레옹도 그럴진대 짧은 정치 경험의 안 교수가 감당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머리만으로 정치를 한다면 아인슈타인은 대통령을 몇 번이라도 하고 남았을 것이다.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이 정치 9단이라면 안 교수는 정치 9급이 아닌가.
安, 이제 본업에 충실하라
외부 세력의 정치도구였든,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려다 좌절한 정치실험가였든 안 교수의 소동이 한국 사회에 끼친 영향은 크다. 기성 정치권의 변화를 바라는 마음이 이렇게 컸었나 하는 것도 느끼게 했지만 그렇지 않아도 미움의 대상인 정치에 대한 냉소, 혐오가 더 짙어졌다. 정치가 더욱 남세스럽게 되었다. 사회 엘리트 집단에 대한 반감이 더 커졌다.
원래 정치인은 모든 사람과 세상사의 문제를 지적하지만 자신의 책임에 대해서는 아주 너그럽다. 혹 안 교수도 자신의 무책임을 잊은 채 ‘낡은 정치의 벽에 부딪힌 새 정치 아이콘의 좌절’로 이미지를 추스르면서 재기에 나서려 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는 우선 자신을 지지하고 따랐던 사람들의 믿음과 기대를 배반한 것에 대해, 국민에게 소란을 피운 것에 대해 반성해야 한다.
진정 그를 위해 조언하고 싶다. 더는 정치판을 기웃거리지 말고 그저 정치를 친구처럼 여기며 자신의 본업에 충실하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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