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이형삼]박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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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2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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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의 4번 타자 출신인 야구 해설가 마해영은 1993년 호주에서 열린 아시아선수권대회에 출전했다. 국가대표팀 최고참이었던 그는 막내인 한양대 1학년생 박찬호와 숙소에서 한 방을 쓰면서 깜짝 놀랐다. 찬호는 훈련이 끝나면 욕조에서 더운물과 찬물 찜질을 번갈아 했다. 마치 재활치료라도 받는 듯 여간 정성이 아니었다. 물을 빼고 채우는 동안엔 쉬지 않고 팔굽혀펴기를 했다. 샤워를 마치면 욕실 문에 튜빙 밴드를 걸어놓고 당기며 근력과 유연성을 키웠다.

▷박찬호는 하체가 튼튼해야 좋은 투수가 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어릴 때부터 오리걸음으로 가파른 고갯길을 올랐다. 하체를 강화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병적(病的)인 정도에 이를 만큼 달리기에 집착했다. 1994년 미국 메이저리그 진출 이후에는 팀 훈련 2시간 전부터 야구장에 나와 몸을 만들었고 등판하는 날엔 경기 전에 숫자 퍼즐을 풀며 집중력을 길렀다. 2002년 텍사스 레인저스와 5년간 6500만 달러의 대형 계약을 맺었으나 거듭된 부상으로 성적이 부진하자 ‘먹튀’ 논란이 일었다. 마해영은 “FA(자유계약선수)가 되려고 스스로를 혹사한 후유증으로 부상이 잦았던 것 같다. 이적(移籍)한 첫해만이라도 몸을 좀 추스르면서 쉬었다면…”이라며 안타까워했다.

▷미국 진출 3년 만인 1997년 풀타임 메이저리거가 된 박찬호는 5년 연속 두 자릿수 승수를 기록하며 외환위기로 시름에 잠긴 국민에게 희망의 백구(白球)를 쏘아 올렸다. 시속 160km에 육박하는 강속구에 화들짝 놀란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이 야구 변방 한국으로 날아들었다. 서재응 김병현 봉중근 같은 ‘박찬호 키즈’가 속속 미국 무대를 밟았다. 메이저리그는 더이상 감히 넘볼 수 없는 ‘그들만의 리그’가 아니었다. 박찬호와 후배들은 야구 본고장의 거포(巨砲)들과 당당하게 맞서며 국가적 자긍심을 끌어올렸다.

▷메이저리그 통산 전적 124승 98패, 1993이닝 투구. 아시아 출신 선수 최다승, 최다투구 위업을 세운 박찬호가 은퇴를 선언했다. 소속팀 한화 팬들은 “그는 존재만으로도 가치가 있다”며 아쉬워했다. 후배들이 그의 눈빛과 행동만 봐도 배울 게 많다는 뜻이었다. 박찬호가 홈페이지에 남긴 마지막 말은 “미안합니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였다. 우리가 그에게 돌려주고 싶은 말이다.

이형삼 논설위원 hans@donga.com
#박찬호#은퇴#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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