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총장은 검찰의 ‘몸통’일까. 30일 사퇴한 한상대 검찰총장의 뒷모습을 보면 총장도 그저 ‘꼬리’에 불과한 것 같다. 한 총장은 이날 사퇴의 변에서 “검사 비리 사건과 내부 분란에 대한 어떤 질책과 비난도 달게 받겠다”고 했다. 이로써 검찰은 근본적 개혁을 요구하는 여론의 화살을 잠시 피할지 모른다. ‘꼬리 자르기’란 말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한 총장 사퇴의 도화선이 된 최재경 중수부장과의 갈등은 검찰의 또 다른 치부를 드러내줬다. 최 중수부장은 김광준 서울고검 검사의 10억 원 수뢰 혐의에 대한 경찰 내사와 검찰 감찰조사가 진행되던 11월 8, 9일 김 검사와 언론 대응요령에 관한 문자를 10여 차례 주고받았다. ‘계속 부인만 할 수도 없고 어떡하지?’(김 검사) ‘사실과 다르다고 하고 구체적인 이야기는 하지 마세요. 강하게 대처, 위축되지 말고 욱하는 심정은 표현하세요.’(최 중수부장)
최 중수부장은 대학동창인 김 검사에게 사적인 조언을 해줬을 뿐이라고 항변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검찰의 꽃’이라고 자처하는 대검 중수부의 수장이라면 ‘의혹을 부인하고 강경 대처하라’고 하기보다는 ‘잘못이 있다면 인정하고 죗값을 받으라’고 설득하는 게 상식일 것이다. 그의 진의가 무엇이든 국민 눈에는 ‘비리를 감싸 조직을 지키려는’ 시도로 비쳤을 뿐이다.
‘뇌물 검사’ ‘성(性) 검사’ 사건을 잉태한 본질은 무슨 짓을 해도 처벌을 피해온 검찰의 성역화다. 비리수사로 잔뼈가 굵은 김 검사가 차명계좌로 수억 원을 받고, 신참검사가 여성 피의자와 성관계를 맺을 엄두를 낸 배경에는 ‘조직이 나를 지켜줄 것’이란 잠재적 믿음이 있었을 것이다.
한 총장의 사퇴로 중수부 폐지, 외부인사 주도 검찰개혁위원회 설치 등 ‘한상대 개혁안’은 빛도 못 보고 묻히게 됐다. 자체개혁을 이끌어갈 구심점이 없는 검찰로선 이제 타의에 의한 개혁을 거부할 명분도 없어졌다. 대선주자들이 앞다퉈 검찰 개혁을 공약한 마당에 자율적으로 개혁할 기회를 놓친 것이다.
검찰은 위기에 몰릴 때면 수뇌부의 ‘용단’을 끌어내 비난여론을 잠재운 뒤 조직을 지켜냈던 기존 방식을 이번에도 반복했다. 총장이 바뀌어도 검찰은 그대로인 이유다. 국민의 요구보다는 조직의 안위가 우선인 그 뿌리 깊은 관성이 검찰을 지탱해온 ‘몸통’인 셈이다. 검찰 스스로 환부를 도려낼 의지도 능력도 없다면 외부로부터의 ‘대수술’ 외엔 해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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