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36>일어나지 않는 일 때문에 서해에 갔다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2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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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목 (1974∼ )

저녁이 하늘을 기울여, 거품 바다
그득 한 잔이다.

속에서부터, 모든 말은 붉다. 불길 몸으로 휘는 파도의

혀.

돌아와 한 주전자 수돗물을 받았다.
이 위로, 몇 척의 배가
지나갔을까.

불에 올렸다.

리듬이 탄력 있게 넘어가는 시다. 시에 드러나 있지는 않지만, 화자는 화가 나 있다. 누군가의 말에 큰 상처를 받은 것 같다. “말을 그따위로 해!”

울화로 부글부글한 화자는 바다로 달려간다. 아마 바닷가 횟집에 들어갔을 것이다. 횟집 유리창 너머 하늘 가득 노을이 넘실거렸으리라. 화자는 큰 잔 가득 소주를 붓고 벌컥, 그득 한 잔 노을을 삼키는 바다와 대작했으리라. 화자의 머리에 떠오르는 말들은 비분으로 붉은데, 그만큼이나 붉은 파도의 커다란 혀가 화자의 생채기 난 속을 핥아줬으리라.

술을 많이도 마셨나 보다. 집에 돌아와서 한 주전자 가득 수돗물을 받는다. ‘이 위로, 몇 척의 배가/지나갔을까.’ 주전자에 담긴 물만 봐도 그 심상이 떠오를 만큼 오래 들여다 본 바다. 바다의 위로가 화자를 어느 정도 진정시켜주었나 보다. 이제는 차분히 차를 끓여 마시려는 걸 보니.

황인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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