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야권 원로 모임이라는 ‘희망 2013 승리 2012 원탁회의’의 좌장격인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가 안철수 전 후보 측의 차기 정부 지분을 보장하라고 민주통합당 측에 훈수를 뒀다. 대선에서 문재인 민주당 후보가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에게 패할 것 같다는 위기감에서 안 전 후보 측을 끌어들이려고 노골적인 자리 나눠먹기를 제안한 것이다.
원탁회의는 그제 성명을 통해 “선거 승리 이후의 첫걸음부터 민주당이 기득권을 내려놓고 더 폭넓은 세력과 공동보조를 취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이 제시돼야 한다”고 밝혔다. 백 씨는 어제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원탁회의에서 지분 나누기를 권유하는 것처럼 비칠 수 있어서 인수위 얘기를 하지 않고 ‘승리 이후의 첫걸음부터’라는 표현을 썼다”며 “까놓고 얘기하면 인수위를 어떻게 운영하느냐, 이게 사실은 가장 중요하다”고 속내를 ‘까놓았다’. 인수위에서 차기 정부를 세팅할 때부터 안 전 후보 측 인사들을 동참시켜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지만 실은 차기 정부에서 나눠줄 자리를 안 전 후보 측에 확실하게 보장해 막바지 대선 운동에 끌어들이라는 주문이다.
안 전 후보 측은 문 후보 지지 수준을 놓고 안 전 후보와 캠프 사이에 온도차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안 캠프 실장급 상당수는 집권할 경우를 염두에 두어서인지 문 후보를 적극 도와야 한다는 입장이다. 새 정치를 표방한 안 후보가 ‘권력 배분’ 희망을 갖고 있다고 믿고 싶지는 않다. 만약 안 전 후보 측에서 요구하지도 않았는데 원탁회의가 안 전 후보 측이 노골적으로 요구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짐작해 먼저 자리 나눠먹기를 제안하라고 민주당 측에 주문한 것이라면 후안무치한 훈수가 아닐 수 없다.
천안함 폭침도, 서해 북방한계선(NLL)도 인정하지 않는 원탁회의가 천안함 폭침과 NLL을 모두 인정하는 안 전 후보와, 둘 다에 모호한 입장을 취하는 민주당의 ‘묻지 마 연대’를 중재하는 것 자체가 주제 넘는 일이다. 백 씨의 ‘2013년 체제론’은 4·11총선에서 민주당의 패배로 절반이 무너졌다. ‘2013년 체제론’은 대선에서도 민주당이 패배하면 완전한 실패로 돌아간다. 그럴 소지가 커지니까 백 씨는 새로운 시대에 대한 국민의 열망 같은 고상한 말은 다 집어던지고 ‘까놓고’ 나눠먹을 자리를 거론하고 있다. 적나라한 권력욕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