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37>버티는 삶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2월 7일 03시 00분


버티는 삶
―박상우 (1963∼ )

사막과
황무지와
무인도로 이루어진
나의 세계

갈증을 견디기 위해서는
한 잔의 물만,
허기를 견디기 위해서는
한 움큼의 먹이만
있으면 되고
외로움을 견디기 위해서는
인간은 본디 섬이라고
믿으면 되느니,

그런 삶도
그럭저럭 버틸 만하다
햇빛이 닿지 않는 심해(深海)에 빠져
염통과 뇌가 터질 듯 말 듯해도


‘사막과/황무지와/무인도로 이루어진/나의 세계.’

한 마리 인간의 외로움이 절절하다. 시의 어조는 무표정하리만치 담담한데, 거기서 배어나오는 비장함이 찌릿찌릿하다. 박상우는 시의 로커(rocker)다.

‘햇빛이 닿지 않는 심해(深海)에 빠져/염통과 뇌가 터질 듯 말 듯해도.’

이토록 처절한 사이키델릭 상태에서 거칠게 악을 쓰지 않고 가라앉은 목소리로 절규를 읊조리는, 감정적이기보다 이성적인 로커.

살림과 마음의 힘겨운 근황(近況)을 꾸밈없이 드러낸 시 ‘버티는 삶’이 실린 시집 ‘이미 망한 생(生)’에서 시인은 ‘뭔가 잘못 살아온 삶’의 양상들을 분석하고 선고하고,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 선언한다.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황인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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