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대 미국 서북부 몬태나 주가 배경인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1992년)을 생각하면 주인공 형제가 계곡에서 긴 낚싯줄을 아름답게 내던지는 장면이 떠오른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들이 술집에서 마시던 보일러메이커를 더 기억할지 모른다. 보일러공이라는 뜻의 이 술은 맥주에 위스키를 담은 작은 잔을 빠뜨려 마신다. 우리나라 폭탄주의 원조다. 미국에 연수 간 한국의 장교들이 수입해 군에 먼저 퍼뜨렸고, 군인들한테 배워 검찰로 퍼뜨린 사람은 춘천지검장을 지낸 박희태 전 국회의장이라는 설이 있다.
▷보일러메이커는 미국에서 주로 부두 노동자를 중심으로 마셨다. 북미지역 보일러공 및 선박 같은 대형 철제 구조물의 제작, 유지, 관리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산별노조인 ‘보일러메이커 국제형제애’의 홈페이지에 따르면 위스키잔을 담근 맥주잔에서 입을 한 번도 떼지 않고 다 마실 때만 보일러메이커라고 부른단다. ‘원샷’을 하지 않을 때는 ‘어 숏 앤드 어 비어(a shot and a beer)’라고 한다. 위스키 한 잔에 맥주 한 잔인 셈이니 쓴 위스키를 털어넣고 연이어 맥주로 입가심한다는 말이다.
▷몇 년 전 할리우드 남성 스타와 친구들의 이야기를 다룬 미국 TV드라마 ‘안투라지’에 주인공들이 사케봄을 마시는 장면이 나왔다. 일본 술 사케에 폭탄을 뜻하는 ‘봄(bomb)’이 붙은 이 술은 맥주에 사케를 집어넣는 것 말고는 폭탄주와 똑같다. 맥주잔에 걸쳐 놓은 젓가락 한 벌 위에 사케잔을 올리고 테이블을 쳐서 아래로 빠뜨려 마신다. ‘도미노주’를 시연하는 동영상도 인터넷에 떠 있다. 한국인에게서 폭탄주를 배웠다는 일본인이 대다수인 걸 보면 사케봄도 폭탄주의 아류 같다.
▷식품의약품안전청이 조사해보니 30∼50대보다 20대가 폭탄주를 더 즐겨 마신다고 한다. 심지어 15∼19세의 22.7%도 폭탄주를 마셔본 적이 있다. 최근 미국을 비롯해 독일 프랑스 등지에서는 전통주나 리큐어를 카페인 함유량이 무척 높은 에너지드링크와 섞어 마시는 ‘예거봄’ ‘스키틀봄’도 나왔다. 식약청 조사에서는 이런 ‘변종 폭탄주’를 마셔본 대학생도 적지 않았다. 일터의 스트레스를 풀려고 직장인들이 부어 넣듯 하는 폭탄주를 대학생들이 일찍 배우는 것은 씁쓸하다. 청춘이 아프긴 아픈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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