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사 초기에 몽골로 출장 간 적이 있다. 잠깐 짬이 나 수도(首都) 울란바토르 시내 골동품가게에 들렀는데 말굽 모양 장식품에 눈이 갔다. 주인은 칭기즈칸(1162?∼1227)이 쓰던 것이라며 우리 돈으로 3만 원쯤을 불렀다. 어이가 없었지만, 칭기즈칸이 쓰던 것이라는 걸 어찌 증명할 거냐고 물어봤다. 씩 웃던 사장은 통역을 통해 한마디했다.
“그러니까 이렇게 싸죠.”
칭기즈칸은 몽골에서 영웅이자 종교다. 우리에겐 아픔을 줬지만, 그가 이룩한 업적을 몽골 사람들이 자랑스러워하는 건 당연하다. 인류 역사상 칭기즈칸만큼 넓은 땅을 차지한 패왕은 이전에도 이후에도 없었다. 이슬람의 ‘인샬라(신의 뜻대로)’처럼 몽골에선 “칭기즈칸이 지켜본다”라는 말을 수시로 쓴다.
하지만 정색하고 되씹어 보자면, 사실 칭기즈칸이 ‘어디에서’ 보고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의 무덤이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떤 형태로 매장됐는지 문헌조차 남질 않았다. 묘를 만든 뒤 말 1000여 마리가 밟아 평지로 다져 버렸다거나 진시황처럼 수백 명을 함께 순장(殉葬)했다는 풍문만 전해진다. 수많은 세계 고고학자와 보물 사냥꾼들이 찾아 나섰지만 언제나 빈손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800년가량 미스터리였던 칭기즈칸의 무덤이 조만간 모습을 드러낼 거란 반가운 소식이 들린다. 시사주간지 뉴스위크에 따르면 미국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학(UCSD)과 전미지리학협회(NGS) 몽골과학아카데미 등이 참여한 다국적 탐사단이 최근 그의 무덤이 확실시되는 장소를 찾아냈다. 앨버트 린 NGS 연구원은 “칭기즈칸의 묘로 짐작되는 건축물 토대에서 황제가 소장했음직한 13세기 유물을 다량 발견했다”라며 “위성 사진과 지질탐사자료 분석이 마무리되면 더 명확히 알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흥미로운 건 탐사 결과가 틀림없다면 몽골 안팎을 그토록 헤맸던 이들로선 허망하게도 무덤은 의외로 코앞에 존재했다. 단서는 전설이다. 울란바토르에서 동북쪽으로 100여 km 떨어진 헨티 산맥은 몽골 사람들이 ‘칸(군주)의 산맥’이라 부르는 곳이다. 역사가들은 그곳을 칭기즈칸의 출생지로 추정해 왔는데, 무덤 역시 거기에 있었던 것이다.
엄청난 역사적 성취를 앞뒀지만 몽골 정부와 탐사단은 무척 조심스럽다. 자세한 정보가 공개되면 도굴꾼의 먹잇감이 되기 십상이다. 몽골은 오랜 경제적 정체를 겪으며 불법 도굴과 밀수출이 성행하고 있다. 울란바토르국립대의 에르데네바트 교수는 “지난해 발견된 바얀홍고르의 황족 묘지는 발표 직후 며칠 새 뼈와 옷가지 빼곤 모두 훔쳐 갔다”라고 한탄했다. 하물며 칭기즈칸이라면 눈에 불을 켜고 덤빌 거란 얘기다. 게다가 묘 발굴을 신성모독이라며 내켜 하지 않는 상당수 몽골 국민의 정서도 걸림돌이다.
더 큰 문제는 중국이다. 동북공정의 깃발 아래 칭기즈칸 역시 자기네 조상이라 우기고 있다. 이미 자국에 관련 박물관과 학회를 세웠고, 무덤 공동발굴권도 요구하고 나섰다. 밀수출 유물도 대부분 중국으로 흘러들어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몽골 정부는 중국에 공식 항의할 수도 있지만 중국에 대한 경제 의존도가 커 어정쩡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국력이 달리니 제 목소리도 못 내는 설움. 남 얘기로만 치부하기엔 왠지 우리도 뒷목이 뜨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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