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은 그동안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임기 마지막 날까지 일하겠다”고 말해왔다. 코앞에 다가온 대선 관리는 물론이고 세계 경제위기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막판까지 국정을 소홀히 할 수 없는 데다 ‘일하는 대통령’으로 기억되고 싶다는 의지의 표명이기도 하다.
그러나 최근 청와대 일부 참모를 보면 이런 의지가 제대로 실현될지 의심스럽다. 임기가 아직 70일 이상 남았고 북한은 장거리 로켓을 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상황에서 공공기관이나 공기업으로 각자도생하는 ‘엑소더스’가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주로 대선 캠프 출신이거나 청와대에 갑자기 합류한 ‘어공(어쩌다 공무원)’들이다.
지난해 12월 청와대에 온 A 비서관은 최근까지 “이명박 정부가 제대로 평가받도록 뛰겠다”고 말해왔다. 다른 수석실의 대통령 일정 조정권까지 가져와 청와대에서 실세로 통했다. 그러더니 지난 주말 돌연 한 공공기관의 알짜 보직으로 이동한다며 짐을 쌌다. 국정홍보를 실무 지휘하던 B 비서관도 갑자기 “떠나게 됐다”며 지방의 한 공기업 감사 자리를 꿰찼다.
정부 유관기관이나 민간업체로 자리를 옮겼거나 원서를 내려는 행정관들은 일일이 세기도 어려울 정도다. 11월에 국제통화기금(IMF) 이사로 옮긴 윤종원 전 경제금융비서관은 공무의 연속이라는 점에서 이들에 비하면 애교에 가깝다.
물론 청와대 근무 이후 불투명한 미래를 걱정하는 이들을 비난만 할 수는 없다. 역대 정권에서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런 일은 으레 있었다. 청와대엔 꿋꿋이 자기 직책에 충실하겠다는 사람이 더 많은 만큼 몇 명이 나간다고 해서 청와대 일이 제대로 안 돌아가거나 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대선을 불과 얼마 남기지 않은 시점에 자리 찾기에 혈안이 된 이들의 행태다. 사실 지금껏 청와대에 남아 있는 참모들은 이 대통령과 임기를 함께할 것이라는 공감대가 있었다. 이 대통령도 4·11총선을 앞두고 “나갈 사람은 미리 나가라”라고 했다.
지금의 청와대 사람들이 그렇게 비판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청와대 참모들도 5년 전 대선을 앞두고 이 정도는 아니었다. 양정철 당시 홍보기획비서관은 무수한 욕을 먹으면서도 노 전 대통령과 임기를 함께했다.
대선 후 청와대의 역할은 지금보다 더 줄겠지만 지금의 동북아시아 정세나 세계 경제 상황은 어느 때보다 복잡하다. 이런 상황에서 청와대 근무를 스펙 쌓기로만 이용하곤 서둘러 떠나는 참모들을 바라보는 이 대통령의 심사는 과연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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