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해, 공중 역사 아래 공중에게 고백을 하려다 만다 군고구마 통에 때늦은 불 지피는 할머니가 내가 버린 고백을 까맣게 태우고 있다 이 허망한 봄날
겨울을 견딘 묵은 사과들이 소쿠리에 담겨 서로 껴안고 있다 또 다른 출발을 꿈꾸는 걸까? 아직 붉다
역사가 흔들릴 때 문득 두고 온 사랑이 생각났다 푸른 강물 위 새로 도착하는 생(生)과 변함없이 떠나고 있는 생(生)들이 일렁인다
옥수(玉水)역, 참 예쁜 이름이다. 수도권 남동쪽 끝과 서북쪽 끝을 잇는 지하철 3호선의 허리께에 있는 옥수역. 대개의 지하철역과 달리 옥수역 역사는 높다란 기둥에 실려 공중에 둥실 떠 있다. 그 플랫폼 창 너머로 한강의 푸른 강물, 강 건너에 압구정역. 옥수역은 압구정역이나 강남역이나 홍대입구역이나 혜화역처럼 번화하고 혼잡하지 않다. 서민들의 전철역은 한산하고, 좀은 운치 없고 삭막하다.
수도권 시민은 대개 한 달에 50번쯤 전철역을 왔다 갔다 하면서 살고 있다. 그날이 그날인 나날. 우리 삶에는 별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심지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 같다. 특별한 풍경이 없는 전철역처럼 변함없이 평범한 하루 또 하루. 그런데 어느 날 문득 ‘역사가 흔들릴 때’가 있다. 가령, ‘문득 두고 온 사랑이 생각’날 때. 그러나 문득 그럴 뿐, 강물은 흘러갑니다, 아아. 쓸쓸함 일렁이는 전철역과 시인의 마음이 애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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