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다시피 스티브 잡스는 남편감(?)으로 절대 쉬운 사람이 아니다. 주기적으로 흥하고 망하며 평안할 날이 없었던 사업적 시련, 새로운 것을 창조해야 하는 예술가로서의 고통, 신경질적이고 집착하는 성격, 자신감을 넘어서 남을 무시하는 오만함, 한번 아니다 싶으면 뒤도 안 돌아보는 매정함, 생물학적 부모에게서 버림받은 트라우마에다 결혼 전 아이까지 낳은 방탕(?)까지 그의 내면은 매우 불안정했다.
이런 그의 삶의 뒤에는 부인 로런 파월 잡스의 내조가 결정적이었다. 로런은 잡스의 창조물인 애플 기기와 비슷한 점이 많다. 한마디로 잡스의 취향 그대로라고 할까. 긴 팔다리, 뛰어난 외모라는 하드웨어에 독립심이 강하고 똑똑하고 영리하다는 소프트웨어를 가진 사람이다. 잡스의 괴팍한 성격과 특이한 생활 방식을 감당하는 것을 넘어 잡스에게 휘둘리지 않으며 오히려 그를 다룰 줄 아는 여자였다. 가식이 없고 털털했으며 뛰어난 공감 능력을 지녔고 희생정신을 행동으로 실천할 줄 아는 휴머니스트이기도 했다.
독립심 강해 괴팍한 남편 휘어잡아
로런은 1963년 뉴저지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해병대 소속 조종사였는데 전사했다. 어머니가 재혼을 했지만 결혼 생활이 성공적이진 못했다. 불행한 결혼생활을 했지만 경제 능력이 없어 고통을 받던 어머니를 보며 로런은 ‘여자는 언제든 자립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라고 느꼈다. 로런은 미국 내 손꼽히는 명문 와튼스쿨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바로 월스트리트로 입성했다. 메릴린치에서 자산 운용을 맡았고 골드만삭스에서 3년간 채권투자전략가로 일했으며 스탠퍼드대에서 경영학석사(MBA) 과정을 거쳤다.
잡스와의 만남은 운명적이었다. 1989년 잡스가 넥스트(NeXT)를 경영하고 있을 당시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에 강의를 온 것. 입심 좋고 프레젠테이션에 강한 잡스지만 그날따라 강의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앞줄에 앉은 아름다운 여성에게 첫눈에 반해 버렸기 때문이다. 바로 로런이었다.
로런이 첫째 줄에 앉았던 것도 운명이었다. 마침 그날 늦게 와 자리가 없어 앉았던 것. 잡스는 강의를 마치고 돌아가려다가 바로 로런에게 달려가 “저녁 식사 같이 하지 않으실래요?”라고 용감하게 데이트 신청을 했다. 로런은 승낙했다. 로런은 26세, 잡스는 37세였다. 그리고 1991년 3월 18일 백년가약을 맺었다. 잡스의 오랜 친구인 스님이 주례를 맡은 소박한 결혼식이었다.
채식주의자로 검소한 생활
로런은 잡스가 결혼하기 전에 얻은 딸 리사와, 잡스와의 사이에서 얻은 리드(아들), 에린(딸), 이브(딸) 등 네 명을 키우면서 남편이 죽을 때까지 20년간 충실한 결혼생활을 했다. 잡스는 죽기 전 결혼 20주년이 되던 날 “로런보다 더 좋은 사람을 만날 수는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로런은 잡스와 많은 부분이 닮았다. 둘 다 채식주의자이며 독립심이 강하고 물질에 대한 집착이 별로 없었다. 잡스는 필요 이상의 소유가 번민을 낳는다는 선불교 사상을 믿었다. 로런 역시 ‘돈은 자립하는 수단일 뿐 사람의 정체성을 만들지는 않는다’라고 믿었다. 집도 아이들이 쉽게 친구들 집에 놀러갈 수 있는 장소로 정했다. 가구 하나를 사도 꼭 필요한 것인지 토론하는 등 둘 다 매우 검소했다.
자식 교육도 마찬가지다. 잡스는 백만장자이지만 아이들을 돈으로 키우지는 않았다. 두 사람은 부를 과시하지 않고 아이들을 검소하게 키웠다. 잡스는 때로 아이들이 맘에 들지 않으면 학비 지원을 중단하기까지 했다.
하버드대에 다니던 맏딸 리사가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영국 런던의 킹스칼리지로 유학을 떠났을 때 잡스는 딸과 말싸움을 벌이다가 아예 몇 달 동안 서로 말도 하지 않았다. 잡스는 갈등이 심해지자 학비 지원을 끊었다. 잡스는 리사의 하버드대 졸업식에도 초대받지 않았다며 가지 않았다.
로런은 이런 아버지를 둔 아이들을 한결같은 사랑으로 이끌었다. 다른 일도 그랬듯 잡스는 뭔가에 몰두하기 시작하면 아이들을 완전히 무시해 버리고 거리를 두기 일쑤였다. 아버지로 인해 힘들어했던 아이들에게 로런의 역할은 컸다. 로런은 아들 리드가 두 살 되던 해에 직장을 그만두고 아이들의 교육과 내조에 집중했다.
로런은 한 우물만 파는 잡스와 달리 관심 분야가 다양했다. 스탠퍼드대 MBA 합격통지서를 받자마자 입사 3년차이던 골드만삭스에 과감하게 사표를 던지고 이탈리아로 떠났다. 그리고 학기가 시작할 때까지 8개월 동안 밀라노에서 미술사를 공부했다. 잡스와 연애할 때 로런은 잡스를 이탈리아로 초대해 관광을 시켜 줬을 정도로 이탈리아를 좋아하고 예술을 사랑했다.
결혼 후에는 자연음식을 파는 ‘테라베라’라는 회사를 공동 설립하고, 온라인 학습 자료를 만드는 ‘아치바’라는 회사의 이사진을 맡기도 했다.
교육, 여성 인권, 자연보호, 비영리사업에 관심이 많은 로런은 2010년 10월 1일부터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 이사진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로런은 유색인종이나 저소득층 자녀들의 대학 진학을 돕는 방과후 교육 프로그램을 만드는 비영리단체 ‘칼리지트랙’을 공동 설립했다. 이 ‘칼리지트랙’ 활동을 하면서 불법 이민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그는 정치적 행보도 시도하는 중이다. 로런은 불법 이민 자녀들에게 시민권을 부여하는 내용의 ‘드림 액트’ 법안 통과를 위해 최근 워싱턴을 자주 방문하고 있다. 지난달 이민 개혁을 추진하는 의원들을 면담한 데 이어 내년 1월에도 다시 정치인들을 만나 법안 통과의 필요성을 설명할 예정이다. 생전 정치에 별로 관심이 없던 남편 잡스와는 정반대의 모습이다.
‘정치운동가의 길’ 걸을지 관심
48세에 남편과 사별한 로런은 올해 9월 미 경제잡지 포브스가 발표한 전미 부호 순위에서 추정 자산 110억 달러로 28위를 차지했다. 그는 현재 실리콘밸리에서 가장 부유한 여성으로 뽑히기도 했다. 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는 17일 남편 사후 막대한 유산 상속으로 실리콘밸리의 부호에 오른 그가 본격적인 정치운동가의 길을 걸을지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다고 전했다.
이수진 통·번역가
(참고=제프리 영, 윌리엄 사이먼의 ‘iCon’, 월터 아이작슨의 ‘스티브 잡스’, 뉴욕타임스, 월스트리트저널, 포브스, 웹사이트 politico.com, stanford.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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