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찬식 칼럼]문화대통령을 갖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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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2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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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찬식 수석논설위원
홍찬식 수석논설위원
대선후보 TV토론에서 문화예술 분야는 빠져 있었다. 지난 일요일 밤 열린 박근혜 문재인 후보의 사회 분야 토론에 은근히 기대를 걸었으나 끝내 다뤄지지 않았다. 대선후보 TV토론의 주제는 선거방송토론위원회 위원들이 선택한다. 전문가들로 구성된 위원들은 TV토론에서 어떤 문제를 놓고 토론했으면 좋을지 여론조사를 하고 학술단체, 직능단체의 의견을 참고한다고 한다. 그럼에도 세 차례에 걸쳐 300분이 넘게 진행된 TV토론에서 문화예술 문제가 단 한마디도 언급되지 않은 것은 실망스러웠다.

박근혜 문재인 두 후보가 내놓은 공약집을 보아도 문화예술 분야는 원론 수준에 머물고 있다. 두 후보 모두 문화 쪽에 재정 지원을 확대하겠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정부가 돈을 많이 푼다고 해서 저절로 ‘문화 국가’로 바뀌지는 않는다. 요즘은 지자체마다 수백억 원씩 들여 문화예술회관을 화려하게 지어놓고 있지만 과거보다 지역문화가 발전하고 활성화됐다고 평가하기는 어렵다. 문화를 담는 그릇 못지않게 그 안에 무엇을 채울지가 중요하다.

올해는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열풍을 일으키고 국내 한국 영화 관객이 사상 처음으로 연간 1억 명을 돌파하는 등 문화에 대한 국민의 관심과 욕구가 뜨겁게 분출됐다. 어느 나라든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된 다음에는 문화생활에 더 눈을 돌리게 마련이다. 한국 사회도 2000년대 이후 이런 단계에 진입해 있다. 하지만 이번 대선에서 후보들은 문화예술 공약을 선거 막바지에 이르러서야, 그것도 형식적으로 내놓을 정도로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TV 토론 주제에도 못 낀 ‘문화’

세계가 인정하는 ‘문화 선진국’인 영국에서는 선거 때마다 문화예술 이슈를 놓고 공방이 벌어진다. 보수당이 노동당을 누르고 13년 만의 정권교체에 성공한 2010년 5월 선거 때는 문화예술 지원의 우선순위를 놓고 논쟁이 치열했다. 노동당 측은 “소외 계층이 쉽게 문화에 접근할 수 있도록 최대한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보수당은 “글로벌 위기로 인해 정부의 문화 재정도 긴축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뛰어난 예술가들을 지원하는 일에 집중해 영국 문화예술의 질을 끌어올리는 게 먼저”라고 맞섰다. 문화예술을 바라보는 기본 철학의 충돌이었다.

올해 5월 좌파 정권으로 교체된 프랑스에서 문화는 ‘세속 종교’로 불린다. 국민의 10%만이 일요 예배에 정기적으로 참여할 정도로 종교의 역할이 미미한 프랑스에서는 국민 각자의 문화생활이 종교 활동을 대체할 만큼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의미다. 새로 들어선 프랑수아 올랑드 정부가 문화 예산을 일부 삭감하자 한바탕 논쟁이 벌어졌다. 올랑드 정부는 “문화예술인도 현재의 경제적 어려움을 함께해야 한다. 그러나 학생들의 문화예술 교육에 사용되는 예산은 더 늘리겠다”며 설득에 나섰다. 무조건 문화 분야에 돈을 쏟겠다는 한국의 막연한 대선 공약과는 달리 지원의 우선순위에 대해 차원 높은 토론이 오가는 영국과 프랑스의 문화적 힘과 토대가 부럽다.

한국 사회에서 문화 발전과 관련된 논의가 더 활발해져야 할 이유는 여럿 있다. 한류와 같은 문화산업을 지속적으로 성장시켜야 하고, 문화적 상상력과 창의력을 지닌 미래 인재를 키워내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문화예술의 역할 가운데 사회적 통합과 결속력을 높이는 효과에도 주목하고 싶다.

오늘 치러지는 대선에서 후보들은 수많은 공약을 내걸고 있다. 이들의 약속대로 청년들의 일자리가 획기적으로 늘어나고, 사교육비와 등록금 걱정이 사라지며, 늙거나 병에 걸려도 정부가 알아서 다 보살펴주는 세상을 기대하기 어렵지만 설혹 그런 세상이 온다고 해도 서민의 삶은 그다지 달라지지 않을 듯하다. 우리는 1960, 70년대와 비교하면 경제적으로 분명 나아졌으나 국민이 체감하는 행복도와 만족감은 오히려 그때보다 못한 느낌이다. 한국 사회처럼 행복감이 주로 물질적 경제적 차원에서 결정되는 경우 항상 자신보다 형편이 나은 사람을 판단의 기준으로 삼는 함정을 피할 수 없다.

문화의 사회통합 효과 주목해야

미국 펜실베이니아대의 연구진은 한 도시가 문화예술을 활성화하는 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한 결과 지역사회 주민들의 결속력이 강화되고 아동복지와 빈곤율이 개선됐다고 발표했다. 여러 사례를 들 것도 없이 문화예술은 계층을 뛰어넘어 사람들의 마음을 달래고 위로해 주는 치유의 기능을 한다.

최근 한국 사회의 가장 큰 변화는 문화적 수요의 폭발이다. 한국 뮤지컬시장의 팽창은 세계 공연계가 깜짝 놀랄 정도이고 영화는 생활 속에 깊숙이 들어온 지 오래다. 분야는 다르지만 프로야구가 올해 715만 명의 최다(最多) 관중을 모은 것은 시대의 변화를 실감하게 한다. 대선후보들은 서로 대통합을 약속하고 있다. 문화예술은 돈으로는 메워지지 않는 사회통합의 대안이 될 수 있다. 이번에야말로 문화 분야에 적극 관심을 보이고 문화 발전을 위해 더 많이 고민하는 문화대통령을 보고 싶다.

홍찬식 수석논설위원 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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