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김용하]공약 이행 131조원 어디서 짜낼 건가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2월 21일 03시 00분


김용하 객원논설위원·순천향대 교수
김용하 객원논설위원·순천향대 교수
2012년 국민의 선택은 끝났지만 선거 기간에 내놓은 공약(公約)은 그대로 살아 있다. 과거와 달리 공약은 더이상 공약(空約)이 아니고, 실천의 전 과정을 국민이 예의 주시하고 있기 때문에 대통령 당선인으로서 소홀히 할 수 없는 약속이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누구보다도 신뢰를 중요시하기 때문에 이를 반드시 실천하고자 할 것으로 생각된다. 이 때문에 믿음이 가기도 하지만 반대로 걱정도 된다.

지킬 수 없는 공약 과감히 수정해야

박근혜 당선인은 집권 5년 동안 수행할 총선공약으로 27조6000억 원, 대선공약으로 94조6000억 원, 지방교부세 9조2000억 원 합계 131조4000억 원이 소요되는 대(對)국민 약속을 했다. 내용을 보면 복지 30조 원, 여성 23조5000억 원, 교육 18조8000억 원 등 민생 문제 해결에 필요한 예산이 대부분이고, 과거와 같이 사회간접자본 관련 예산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시대의 변화를 실감한다.

예산 항목별로 보면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고 각계각층의 숙원이 담겨 있다고 할 수 있지만 연평균 26조 원에 이르는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 것이냐가 문제다. 물론 대선캠프에서는 131조4000억 원보다 더 많은 134조5000억 원에 이르는 재원 조달 계획을 공시하고 있다. 71조 원은 예산절감 및 세출구조조정으로, 48조 원은 세제개편 및 세정개혁으로, 10조6000억 원은 복지행정 개혁으로 조달할 수 있다고 큰소리친다.

그렇지만 세부 내용별로 보면 재량지출 7% 일괄축소와 금융소득 과세 강화 등 몇 가지 외에는 재원 조달 가능성이 다소 불투명해 보인다. 비과세 감면과 세금탈루 축소는 정부 효율화를 논의할 때는 으레 약방의 감초처럼 들어가지만 수혜자 상당수가 중소기업이나 취약한 자영업자 계층으로 오히려 지원을 확대해야 할 대상이라는 점에서 쉽지 않다. 복지서비스 전달체계도 개혁이 필요하지만 개혁이 꼭 비용 감소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더욱이 향후 5년간 필요한 재원은 조달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 이후에도 가능할 것이냐는 별개의 문제다. 2010년 기준 노인인구 비율은 11.0%이고 우리나라의 복지재정지출은 국내총생산(GDP)의 9.0% 수준이지만, 노인인구비율 15.6%, 1인당 GDP는 3만3000달러가 되는 2020년경에는 현재의 복지제도를 그대로 유지하더라도 GDP의 12.0% 수준으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10년 내에 GDP의 3%포인트가 자연 증가하고 이를 충당하기에 급급한 상황에서 향후 5년 내에 GDP의 2%포인트를 추가로 증액시키는 것은 쉽지 않은 과제가 될 것이다.

물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평균 복지지출 비중은 GDP의 20% 내외로 추산되기 때문에 우리나라라고 못할 것은 없다. 이에 상응하는 조세와 사회보험료 부담을 함께 늘려 나가면 된다. 그러나 중장기적으로 조세나 사회보험료를 높이지 않고 할 수 있는 복지는 매우 제한적이다. 이명박 정부에서 국민 부담률을 높이지 않고 복지지출을 확대했지만 그 대신에 정부 채무가 늘어났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일본 민주당 꼴 나면 최악

박 당선인은 5년 후를 볼 것도 없이 당장 2013년 정부예산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 여야가 대선 이후로 미뤄 놓은 정부예산안을 금년 내로 통과시키기 위해서는 10일밖에 남지 않았다. 정부는 내년 나라살림 규모를 342조5000억 원으로 편성하고 보건복지노동 부문에 97조1000억 원을 배정했지만 국회는 국가책임 보육 강화 등을 위한 추가적인 예산 증액을 요구하고 있다. 현 정부예산안도 GDP 대비 재정수지를 ―0.3% 수준으로 맞추었는데 예산이 증액되면 적자재정 심화는 불가피하다. 더욱이 4%대 경제성장을 전제로 만들어진 세원 조달 계획도 경제침체가 금년과 같이 계속될 경우 달성할 수 있을지 우려되는 상황에서 추가적인 예산 증액은 쉽지 않다.

박 당선인은 12월 19일까지는 정부예산 편성에서 ‘을’의 처지에 있었지만 이제 ‘갑’의 처지에서 생각하고 판단해야 한다. 야당과 협의 과정에서 과거의 원칙을 고수하면 불통이라고 비판받을 수 있고, 원칙을 바꾸면 시작부터 약속을 파기하는 것이 된다. 참으로 어려운 형국이다.

향후 5년간 박 당선인이 극복해야 할 대내외 과제는 수없이 많겠지만 재정운영과 관련된 정책방향 정립은 무엇보다도 시급하다. 국민과의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 그렇지만 일본 민주당의 사례에서 보듯이 처음부터 무리한 공약을 지키겠다고 동분서주하다 뒤늦게 못하겠다고 국민사과를 하는 것과 같은 우(愚)를 범해선 안 된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출범하면 지난 총선과 대선의 공약에 대한 타당성 검토부터 원점에서 다시 해야 한다. 임기 중에 할 수 있는 공약과 할 수 없는 공약을 우선순위에 따라서 재분류하고, 지킬 수 없는 공약에 대해서는 과감히 수정하거나 폐기하고 국민의 이해를 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김용하 객원논설위원·순천향대 교수 yongha01@sch.ac.kr
#공약#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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