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차지완]‘맛집 검색’이 심리전(心理戰)이라고?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2월 21일 03시 00분


차지완 사회부 기자
차지완 사회부 기자
17일 오후 2시 서울지방경찰청 9층 회의실. 민주통합당 문병호 김민기 의원, 김현 대변인은 김용판 서울청장을 비롯한 경찰 수사라인 관계자와 마주 앉았다. 민주당이 대선 직전 제기했던 ‘국가정보원 직원의 댓글 의혹’에 대해 서울청이 중간 수사결과를 발표한 것은 “명백한 선거개입”이라고 항의하는 자리였다. 이들의 대화 한 토막.

“하드디스크에서 복구했던 것 중 기억나는 것 하나만 말해 주세요.”(김민기 의원)

“맛집 블로거의 게시글을 본 기록이 있었습니다.”(경찰)

“확실히 국정원의 심리전단 소속 요원답습니다. 심리전 아시지 않습니까. 공황상태에 빠뜨리는 겁니다. 약한 나를 강하게 보이기도 하고, 강한 자기를 약하게 보이기도 하고…. 그 맛집도 그 일환일 가능성이 있습니다.”(김 의원)

국정원 3차장 산하 대북(對北) 심리전단에서 일하는 28세 여직원이 남긴 일상의 흔적은 엉뚱하게도 경찰 수사에 대비한 지능적 수법으로 탈바꿈됐다. 컴퓨터공학과 출신으로 디지털 기기를 능수능란하게 다루는 엄지족(族)이란 설명도 그럴 듯하게 따라붙었다.

민주당은 처음 의혹을 제기할 때부터 이런 식이었다. 핵심을 찌르는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의혹에 의혹을 덧댔다. 의혹 부풀리기는 집요함을 넘어 강박증으로 보일 정도다. 얼마나 다급했으면 맛집 검색을 ‘고도의 심리전’이라고 주장했을까.

이날 서울청을 찾은 민주당 의원의 분노와 서운함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미완성의 수사결과를 대선후보 TV토론 직후에 발표한 경찰 수뇌부의 판단에 불만을 가질 수는 있다. 하드디스크만 분석했지 휴대전화기, 포털 서버에 대한 수사는 할 수 없었다는 점을 미리 밝히지 않은 것도 미숙한 측면이 있었다.

민주당 의원은 이날 “대선 이후라도 국정조사를 통해 엄정한 책임을 묻겠다”고 밝혔다. 그전에 민주당에서 할 일이 있다. 증거를 내놔야 한다. 박영선 의원은 “제보자를 설득하는 과정”이라고 했고, 우상호 공보단장은 “국정원의 존립과 관련돼 있어 망설이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이런 망설임은 사치다. 민주당 주장처럼 의혹의 실체가 국가기관의 선거개입이라면 국정원은 존립의 위기를 맞아야 하는 게 마땅하다.

경찰 안팎에서는 ‘국정원의 민주당 쪽 비선(秘線)이 드러날까 두려워 공개하지 못할 것’이란 의견이 나온다. ‘독수독과(毒樹毒果) 때문일 것’이란 의심도 있다. 독나무에 열린 열매는 독과일이어서 먹어서는 안 된다는 뜻으로, 수사와 재판에서는 ‘불법으로 수집된 자료는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쓰인다. 난 이런 추측을 믿고 싶지 않다.

“우선 경찰에 신고한 뒤 지속적으로 협조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또 범인을 체포하기 위해 많은 단서를 만들겠다고 경찰에 알렸습니다. 해커는 50만 달러를 요구했고, 우리는 10만 달러를 송금했습니다. 결국 경찰은 그들을 체포했습니다.”

현대캐피탈 해킹사건으로 곤욕을 치른 정태영 현대카드·현대캐피탈 사장은 작년 6월 미국 월스트리트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범인 체포를 위한 ABC가 다 들어있다. 이번에 하드디스크를 분석했던 서울청 사이버범죄수사대는 현대캐피탈이 제공한 단서를 바탕으로 범인 체포에 핵심 역할을 했다.

민주당도 진짜 자신이 있다면 ABC대로 하면 된다. 경찰이 강제수사에 나설 수밖에 없도록 증거를 들이밀 단계다. 국정조사로 엄포를 놓거나, “맛집 검색은 심리전”이라는 생뚱맞은 발언을 할 때가 아니다.

차지완 사회부 기자 cha@donga.com
#맛집 검색#심리전#국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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