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정성희]그는 정치선진국 상징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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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2월 22일 03시 00분


정성희 논설위원
정성희 논설위원
AP통신은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신라시대 진성여왕대 이후 1115년 만에 최초의 한국 여성 지도자가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선거로 당선된 대통령을 세습왕조의 여성 군주와 비교하는 것이 적절한지 모르겠지만 우리처럼 유교전통과 가부장제가 강고했던 나라에서 여성 국가원수가 탄생한 것은 획기적 사건임에 틀림없다.

세계에서 ‘박근혜 키즈’ 나올 수도

박근혜 당선인은 공(功)이든 과(過)든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의 유산(遺産)이 없었더라면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박 당선인은 마거릿 대처 영국 총리나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보다는 부친 네루의 후광을 입은 인디라 간디 전 인도 총리나 남편에 이어 대통령이 된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아르헨티나 대통령을 연상시킨다. 한때는 유력 정치가문이 최고권력자를 배출하는 것이 후진적 정치현상으로 여겨진 적도 있었지만 미국에서도 부자(父子) 대통령이 나왔고 4년 뒤엔 어쩌면 부부(夫婦) 대통령이 나올지도 모른다. 요컨대 정치가문 출신이더라도 민주적 절차에 의해 당선된다면 문제될 게 없다. 8년간의 퍼스트레이디 경험이 상원의원, 국무장관, 잠재적 대권주자로서의 힐러리 클린턴을 만들어낸 것이 좋은 예다.

1997년 정치에 입문한 박 당선인은 15년간 자신만의 전설을 만들어왔지만 ‘박정희의 딸’이라는 집단기억이 늘 그를 따라다녔다. 그러나 이제는 다를 것이고 달라야 한다. 대통령 박근혜는 이미지가 아닌 자신의 정치력과 정책으로 평가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여성의 지위가 낮았던 동북아 지역에서의 여성 대통령은 미국 흑인 대통령에 맞먹는 세계사적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이웃한 중국과 일본은 물론이고 미국과 프랑스도 아직 여성 최고지도자를 배출하지 못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취임 첫해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것을 두고 말이 많았지만 노벨위원회는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라는 상징성에 가점을 줬다. 박근혜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나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나란히 서서 플래시 세례를 받을 때 세계는 대한민국을 정치선진국으로 평가할 것이고 각국의 소녀들은 대통령의 꿈을 키우게 될 것이다. 이는 분명 자부심을 가질 만한 일이다. 앞으로 ‘박근혜 키즈’ 가 많이 나올지도 모른다.

대선 당시 박 후보가 ‘준비된 여성 대통령’을 들고 나온 것은 여성을 부각하는 게 유리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민주통합당은 결혼도 안 하고 아이도 낳아 보지 않은 박 후보를 ‘여성성이 없다’고 공격했지만 본전도 못 건졌다. 개인적으로 박 당선인이 ‘여성성(femininity)’이 없다는 견해에 어느 정도 동의한다. 사실 박 후보가 ‘셋째 아이 등록금 전액지원과 대학 특례 입학’이라는 공약을 내놓았을 때 크게 실망했다. 셋째 아이를 낳을 형편이라면 등록금 걱정은 안 해도 될 집안이라는 점을 어머니가 돼 보지 못한 그는 몰랐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에게 여성성이 없다는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섬김·배려·소통의 여성적 리더십은 세계적 추세이지만 우리나라와 같은 특수한 안보 현실에서는 오히려 약점이 될 수 있다.

人事에서 대처를 닮지 말아야 할 점

그러나 박 당선인이 대처 전 총리를 닮지 말아야 할 것이 하나 있다. 대처는 자신이 여성 총리인 것으로 충분하다는 이유를 대며 여성 각료를 임명하지 않았다. 박 당선인이 남녀를 따지지 않고 인재를 고루 등용하겠다고 밝힌 것은 매우 고무적이다. AP도 “박 후보가 당선된다면 선진국 가운데 가장 성차별이 심한 한국에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예측한 바 있다. 한국의 여성 인력은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데도 성평등지수 108위에, 남녀 간 임금격차는 부자나라클럽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크다. 이런 걸 개혁해야 ‘준비된 여성 대통령’이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
#박근혜#대처#선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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