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칼럼/허 균]뱀에 대한 오해와 진실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2월 22일 03시 00분


허 균 한국민예미술연구소장
허 균 한국민예미술연구소장
뱀의 해, 계사(癸巳)년을 앞두고 있다. 우리는 새해가 되면 그 해가 무슨 띠에 해당하는가를 따져보고 한 해를 점치는 풍습이 있다. 속담이나 꿈, 민담, 설화 등에서 뱀띠로 태어난 사람의 성격은 실속 없는 것으로 드러나고, 속신(俗信·민간신앙)에서 뱀은 부적의 역할을 할 때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불길한 것으로 나타난다. 또 뱀이 등장하는 설화는 대개가 복수하는 이야기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 뱀은 윤회, 영생, 풍요, 번영의 상징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한 예로 경북 영주시 순흥의 신라 석실고분 서쪽 벽에는 꼬리를 문 원형의 뱀이 그려져 있다. 이 뱀은 시작도 끝도 없는 영생을 상징한다.

조선 세종 때 편찬된 노래책 ‘용비어천가’에는 ‘뱀이 까치를 물어 나무 끝에 얹으니 성손(聖孫)이 바야흐로 일어나려함에 기쁜 일이 먼저 있게 되었다’라는 내용이 있는데 이 역시 뱀이 풍요와 번영의 상징이 된 예의 하나다.

또 조상들이 논의 넓이를 잴 때 한 뱀이, 두 뱀이라고 하면서 넓이 단위에 뱀이라는 말을 붙인 것은 뱀을 풍요의 상징으로 여긴 증거다. 뱀이 가진 상징적 의미는 이처럼 다양하면서도 서로 모순되는 경우가 허다한데 이 점은 다른 문화권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알려진 것처럼 기독교문화권에서 뱀은 구약성경의 아담과 이브 이야기처럼 인간을 낙원으로부터 추방당하게 하는 사악한 동물로 취급된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인간에게 선악 구별의 능력을 주었다 하여 선한 존재로 신앙되는 경우도 있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두 마리 뱀이 지팡이를 가운데 두고 서로 얽혀 있는 ‘헤르메스의 지팡이’의 뱀은 평화의 상징이다. 대립되는 양극의 균형을 통해 균형과 조화를 만들어낸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이집트에서 뱀은 나일 강의 신이며 호주 원주민에게는 바다의 신이다. 인도 전설에서 뱀은 모든 신의 아버지인 비슈누를 물 위에서 태어나게 한 신령스러운 동물이다. 그런가 하면 멕시코의 아즈텍족과 북아메리카 인디언들에게 뱀은 지하세력과 인간을 중재하는 신령스러운 존재다.

같은 뱀을 두고도 이처럼 각 민족과 문화권, 그리고 관점에 따라 생각과 해석이 구구하다. 그러므로 뱀의 해에 태어난 사람은 영민하고 지혜가 있다든가, 아니면 공짜를 좋아하고 일생에 남모르는 비밀이나 근심을 갖고 있다는 등의 단편적 해석에 연연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뱀 자체에 집착하기보다 그것을 십이지 문화의 한 요소로 바라보는 시각을 갖는 일이다. 십이지는 고대 동양의 천문학 연구의 소산이다. 십이지에는 하늘의 현상인 천문(天文)과 땅의 이치인 지리(地理)가 담겨 있으며 12라는 수에는 천체의 공간적 분별과 시간적 변화의 원리가 숨어 있다. 공간은 방위로 나타나고, 시간과 계절은 생(生) 성(成) 쇠(衰) 멸(滅)의 변화로 나타난다.

십이지에서 ‘巳’는 ‘已(이)’의 의미를 나타내는 문자부호로 ‘이미’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점차 증가해 온 양기가 이미 절정에 도달함과 동시에 음이 태동하는 시점을 나타낸다. 인생으로 말하면 젊음의 절정기인 청년기에 해당한다.

조상들은 일찍부터 인간은 천상과 지상의 힘, 즉 우주 자연의 원리와 나란히 할 때 비로소 인간다워지며 천심과 땅의 현실을 결합시키는 사람만이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생활철학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행복한 인간생활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자연의 원리를 관찰하고 그 진리를 파악해서 그것을 인간사에 적용하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러한 지혜의 소산이 십이지 문화이고, 띠 동물인 뱀은 거대한 십이지 문화 속의 작은 상징부호에 불과한 것이다.

허 균 한국민예미술연구소장
#뱀#오해#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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