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시대에 진입하면서 한의학 치료는 날로 각광을 받고 있다. 미국이나 유럽 등에서는 한의학을 임상학적으로 연구하기에 바쁘다. 그 과정에서 한의적인 치료 효과는 긍정적으로 밝혀지고 있고 또한 연구 대상에 해당하는 질환 종류도 날로 늘고 있다.
한의학을 대표하는 한국 중국 일본 3개국 중 한국은 어떠한가? 한의대는 6년 과정으로 임상에서 50% 이상의 양방 과목을 포함해 그 질적 수준이 해가 갈수록 향상되고 있다. 경희대 한의대에서 지난 20년간 과학기술논문인용색인(SCI)급 국제 학술지 침구경락 연구 논문 출간은 149편으로 전 세계 1위이다. 2위는 중국 푸단대 132편, 3위 미국 하버드대 98편, 4위 중국 베이징대 88편의 순이다.
고전의학에 충실한 중국과 의료 시스템에서 앞서 있는 일본에 비해 한국 한의학은 과학화와 선진화에 가장 많이 앞서 있다. 의료 산업에서도 한의사가 한 축을 담당하는 만큼 국제 경쟁력을 확보하였고 필자를 포함한 중국 대만 일본의 많은 학자가 요즘에도 한의학을 배우기 위해 한국을 찾는다.
그러나 정작 국내 한의학은 갈수록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아시아에서 가장 큰 한약재 유통 및 판매 시장이던 서울 경동약령시장 내 한의원 수는 20년 전만 해도 350곳이 넘었다는데 지금은 90여 곳으로 줄었다고 한다. 의대와 버금가게 치열했던 한의대 입학경쟁률도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나는 한국 한의학이 위기에 빠진 원인을 양·한방 협진은 물론 현대 의료기기 사용에 제약이 많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일본의 경우 양의사도 일정한 교육과 시험만 통과하면 한방권도 같이 가져 자연스레 양·한방 협진이 가능하다. 침의 경우 3년간 침구사 교육과정을 마치고 시험을 통과하면 침구사 자격이 주어진다. 중국도 대부분의 병원에 양방과와 한방과가 같이 있어서 환자의 요구에 따라 선택 진료를 할 수 있고 필요에 따라 수시로 협진하고 있다. 외과 의사가 수술을 하며 재활은 침 치료나 한방 치료를 병행하는 식이다. 의료기기 사용도 양의사 한의사에 별 제한이 없다.
그런데 한국 한의사들은 마치 ‘조선시대 한의사’처럼 침 뜸 한약 처방만 할 수 있어 현대의료기기 사용에 제한이 있다. 질병을 정확하게 진단하기 위해서는 진맥뿐 아니라 X레이, 초음파, 자기공명영상(MRI) 등 현대 의료장비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데도 말이다.
그런 점에서 처지를 바꿔 생각해 봐야 할 것이 현재 한의학계에서 가장 큰 이슈로 떠오르는 천연물 신약(생약에서 특정 성분을 추출한 신약 의약품)의 처방권 문제이다. 천연물 신약 처방권을 일본은 동양 의학과 관련한 일정 교육을 이수한 의사에 한해서만 주며, 중국은 중의사(한국의 한의사)에게만 준다. 한약 등 생약의 특성과 성질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전문 의료인이 처방권을 가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논리이다. 이는 어디까지나 환자를 고려해서 그렇다. 현재 한국의 경우 양의사들이 엄격하고 충분한 천연물 신약 관련 연수교육을 받고 처방하고 있는데 한의사가 현대 의료기기를 사용하는 것에서도 같은 맥락으로 제한을 풀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재 의학의 발달은 눈이 부실 정도이다. 한의사 진료를 진맥으로만 국한시키면 최신 과학기술이 개발되어도, 한의사가 아무리 공부를 열심히 한다 해도 발전할 수 없다. ‘환자 중심 의학’은 양의사와 한의사가 서로 연구 성과를 공유하고 서로 배우면서 공동발전과 균형발전을 하는 일일 것이다. 2009년 한국의 의성(醫聖)이라 불리는 허준 선생의 ‘동의보감’이 유네스코에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다. 한국의 살아있는 역사이며 전 세계에 내놓을 만한 소중한 자산인 한의학에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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