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은 대통령선거를 의식해 올해 11월 22일까지 정부의 새해 예산안을 처리하기로 합의했었다. 예산안이 대선 결과에 영향을 받지 않도록 하려는 의도였다. 그러나 합의는 지켜지지 않았다. 법정 시한인 12월 2일까지도, 정기국회 시한인 12월 9일까지도 예산안은 처리되지 못했다. 여야 모두의 책임이지만 굳이 따진다면 대선에서 승리를 예상하고 대선 이후에 예산을 조정하기 위해 소극적인 자세를 보였던 민주당의 책임이 더 크다고 본다. 민주당은 새 대통령이 뜻을 펼 수 있도록 3조∼4조 원의 예산을 별도로 떼어놓자는 주장까지 했다. 새누리당은 당시 이에 반대했다.
대선이 끝난 뒤 이번에는 새누리당이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민생 관련 공약을 시행해야 한다며 6조 원의 예산 증액을 요구하고 나섰다. 무상보육 등 복지공약 실현에 1조7000억 원, 중소기업 및 소상공업 지원과 부동산 경기 활성화를 위해 4조3000억 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새누리당은 국채를 발행해서라도 증액하자는 의견이고, 민주당은 “빚을 져서 예산을 짜겠다는 방안은 받아들일 수 없다”며 제동을 걸고 있다. 대선 전에 재정 건전성을 상대적으로 더 강조했던 새누리당과, ‘당선인 예산’ 운운했던 민주당이 선거 이후 처지가 뒤바뀐 형국이다.
박 당선인이 총선과 대선 때 제시했던 복지공약 등을 실현하려면 임기 5년간 131조 원의 예산이 필요하다. 매년 26조 원 이상을 조달해야 한다. 박 당선인은 세금 감면제도의 정비와 불필요한 예산을 걸러내는 구조조정으로 재원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공약 이행도 중요하지만 재정 건전성을 허물어서는 곤란하다. 새누리당은 예산 증액을 말하기에 앞서 기존 예산안 가운데 민원성 선심성의 불필요한 예산이 없는지 꼼꼼히 살펴야 한다. 줄일 수 있는 것은 줄이는 성의를 보여야 한다. 민주당도 대선 패배에 대한 화풀이로 정략적 발목잡기를 한다는 오해를 사지 않으려면 대승적 차원에서 협조할 필요가 있다.
해마다 연말이면 새해 예산안을 둘러싼 여야의 ‘전쟁’이 되풀이되고 있다. 여야의 힘겨루기가 계속된다면 새 정부가 출범하는 첫해를 또다시 정쟁(政爭) 속에서 맞이해야 할 판이다. 새누리당과 민주당은 대선 기간에 새 정치를 굳게 약속했다. 최근 두 당은 28일까지 새해 예산안을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이 약속을 지키는 것이 새 정치의 시금석이다. 여야는 지금부터라도 국민에게 희망과 신뢰를 주는 정치를 만들어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