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朴 차기정부, ‘짜고 치는 공모제’ 꼭 개혁해야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2월 27일 03시 00분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이명박 정부의 임기 말 공기업 낙하산 인사를 겨냥해 “국민과 다음 정부에 큰 부담이 되는 일”이라며 제동을 걸었다. 박 당선인은 지난달 정치쇄신 방안을 발표하면서 “부실 인사가 아무 원칙 없이 전문 분야와 상관없는 곳에 낙하산으로 임명되는 관행은 더이상 없을 것”이라고 다짐한 바 있다. 정권 말기에 청와대 비서들이 공기업과 공공기관으로 대거 옮겨 가는 것은 야당으로 정권이 넘어가지 않았으니 차기 정부가 임기를 보장해 주리라는 기대 때문일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낙하산을 차단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박 당선인이 차기 정부에서 선거 공신(功臣)들에 대한 보상 차원의 낙하산 인사를 하지 않는 일이다.

가장 고질적이고 부도덕한 낙하산 인사 방식은 이른바 ‘공공기관장 공모제’다. 낙하산 인사를 내정해 놓고도 절차적 정당성을 위해 공모제라는 형식을 빌린다. 해당 기관은 낙하산 지원자가 최종 후보군(群)에 포함되도록 압력을 넣고, 그래도 후순위로 밀리면 재공모까지 한다. 전후 사정을 모르는 응모자들은 들러리로 이용당한다. 오죽하면 ‘공모제는 한 명의 낙하산과 여러 명의 바보가 벌이는 대(對)국민 사기극’이라는 말이 나왔겠는가.

공공기관장 공모제는 김대중 정부가 ‘추천제’로 도입했고 노무현 정부에서 ‘공모제’로 바뀌었다. 이명박 정부는 공모제 의무 기관을 확대했다. 세 정부를 거치면서 ‘짜고 치는 공모제’ ‘무늬만 공모제’가 관행으로 굳어졌다. 권력 실세들이 공공기관장 인사에 개입해 이권을 챙겼다는 소문이 끊이지 않았다. 차기 정부가 정권의 줄을 타고 내려온 낙하산 기관장의 앞길까지 챙겨줄 이유는 없다.

2008년 6월부터 4년 동안 공모로 뽑힌 공공기관장 198명 가운데 내부 승진 사례는 9명뿐이다. 여당 의원과 당직자, 대선 캠프나 청와대 출신의 정치권 인사가 46명으로 4분의 1에 이른다. 본보는 올해 9월 시리즈 기사에서 변칙 공모제의 생생한 사례와 문제점을 지적했으나 이명박 정부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선거를 통해 국민의 주권 행사를 위임받은 정권은 유능한 전문가들을 적재적소에 기용해야 한다. 행정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공기관의 장(長)과 임원도 전문성이 필수다. 전문성과 능력이 없는데도 낙하산으로 내려간 기관장들은 노조에 약점이 잡혀 공공기관의 도덕적 해이를 조장한다. 박근혜 차기 정부가 이런 썩은 관행을 개혁하지 못하면 새 정치는 공염불에 불과하다.
#박근혜#공모제#공공기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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