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칼럼/김재원]주역으로 본 2012 임진(壬辰)년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2월 29일 03시 00분


김재원 동양고전학자
김재원 동양고전학자
임진년이 저물고 있다. 올 초 서민들은 ‘흑룡의 기상처럼 일어나 복 많이 받으라’는 덕담을 서로 주고받았다. 하지만 돌아보니 더 고단하기만 했다. 전세금 폭등, 경기 침체, 물가 인상, 일자리 부족으로 생활은 나아지기는커녕 더 힘들어졌다. 대선으로 떠들썩했지만 한 해도 이제 며칠 남지 않았다. 주역으로 보는 올 한 해는 어떤 해였을까?

전세금 폭등 등 고단했던 한해

임진(壬辰)년은 모두 알다시피 흑룡의 해였다. 하지만 용의 기상이 하늘을 찌르는 해라고 볼 수는 없었다. 임(壬)은 방위로는 북방을 의미하고 계절로는 겨울을 상징하며 색으로는 흑색이다. 또 진(辰)은 용을 의미한다. 따라서 임진년은 ‘북방+겨울 물속 흑룡’의 해였다. 얼어 있는 북극해 밑의 용을 연상하면 될 것이다.

용의 방위는 해가 뜨는 동쪽이다. 동쪽에서 떠오르는 태양의 기운을 받아 하늘을 향해 승천하는 것이 용의 기운이다. 그러나 북방의 겨울 얼음 속에 들어 있는 흑룡이 하늘로 오른다는 건 불가능하다. 주역에서는 이런 용을 물에 잠겨 있는 용이라는 뜻으로 잠룡(潛龍)이라고 한다. 잠룡은 한마디로 ‘물용(勿用)’, 즉 ‘쓸모없는’ 용이다.

흑룡이 추운 얼음 밑에서 가끔 몸부림을 치면 지천이 요동을 하는데 이때 백성들의 삶이 편치 않다. 멀게는 임진왜란이 좋은 예다. 올해는 특히 한일 간 과거사 문제와 독도 문제로 떠들썩했다. 공식서명 한 시간을 앞두고 체결이 전격 연기된 한일 정보보호협정(GSOMIA) 밀실처리 문제로 온 나라가 시끄러운 상황에서 동아일보가 8월 24일자 1면 제목으로 ‘임진외란(壬辰外亂·2012 임진년 한일 외교전면전)’이란 제목을 달았던 게 우연이 아니라고 본다.

임진년의 경우 대부분 가뭄과 폭우가 심했다. ‘임진(壬辰)’은 바닷물이나 폭우나 큰 강물이 제방에 갇혀 있는 것을 뜻한다. 명리학을 사용하여 매년 강수량 예측점을 쳐볼 수 있는데 임진년에는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시기에 비가 많지 않아서 농사에 불리하다. 작물도 열매가 잘 여물지 못해 흉년에 속한다. 옛날 같으면 이런 해는 왕이 직접 주관해 기우제를 지냈을 가능성이 높다.

올해는 100년 만의 가뭄으로 댐과 저수지 등의 저수율이 급격히 떨어져 일부에서 바닥을 드러냈고 밭작물들이 타들어 농가의 애를 태웠다. 농촌 지역에서는 단체장 마을이장 주민들이 단비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기우제를 올리는 모습이 많이 보였다. 7월엔 40도에 육박하는 폭염으로 전국이 달궈졌다. 살인적인 무더위는 각종 피해로 이어져 가축 폐사 피해가 가장 많았다. 일사병으로 의심되는 환자도 속출했고 급기야 노인층을 중심으로 사망자까지 나왔다.

독도문제로 한일간 외교전면전

폭염이 끝나자 폭우가 쏟아졌다. 폭우 피해를 복구하기도 전에 기상 관측 이래 최초의 43시간 이내 연이은 태풍이 닥쳐왔다. 15호 태풍 볼라벤과 14호 태풍 덴빈이 하루 사이로 강타한 지 3주 만에 다시 16호 태풍 산바가 엄청난 위력으로 다가왔다. 엄청난 기상이변이었다. 물이 많으면 불(火) 기운을 약화시킨다. 올해엔 원자력발전소 고장, 전력 비상으로 힘들었다.

임진년을 주역의 괘(卦)로 풀면 ‘천풍구(天風구)’라는 괘가 된다. 천풍은 하늘과 바람이 합쳐진 ‘형태’를 말하고 구(구)는 괘의 이름을 말한다. 구는 한자로는 ‘만날 구’의 뜻이긴 하지만 ‘女(계집 녀)’와 ‘后(임금 후)’가 합쳐진 글자로 이는 여자 임금을 뜻한다. 임진년은 한마디로 여자가 주도하는 해였음이 주역에도 나온다. 대한민국 역사상 첫 여성 대통령이 나오기도 했지만 새누리당 비대위원장 시절인 박근혜 당선인을 비롯해 민주통합당 한명숙 대표, 통합진보당 이정희 후보, 진보정의당 대선후보였던 심상정 후보 등 정당 대표가 모두 여자였다.

주역(周易)은 미신이 아니다. 사서삼경(四書三經·대학 중용 논어 맹자+시경 서경 역경)에서 역경이 바로 주역이다. 주는 중국 왕조의 명칭이고, 역은 책 이름이니 ‘주역’은 주나라 때 ‘역’이라는 뜻이다. 역은 ‘바꿀 역’, ‘쉬울 이’의 뜻으로 때에 따라 변화한다는 의미가 있다.

주역은 5000년 전부터 축적된 인류의 과학과 사유(思惟)의 집결체이다. 이 안에는 우주만물의 변화를 형상화한 64괘가 들어 있다. 64괘는 밤과 낮, 봄 여름 가을 겨울 등 시간과 기후의 변화, 동서남북 태양, 달, 5행성의 운행 등 공간의 변화를 관찰한 후 이를 음양의 원리에 따라 기호화한 것이다.

주역은 동양의 자연철학이자 물리학이라고 할 수 있다. 주역 연구에 혼신을 다한 학자 중 한 분이 다산 정약용 선생이다. 다산은 “눈으로 보는 것, 손으로 잡는 것, 입으로 읊조리는 것, 마음으로 생각하는 것, 붓으로 기록하는 것으로부터 밥을 먹고 변소에 가며 손가락 놀리고 배 문지르는 것에 이르기까지 어느 하나도 주역 아닌 것이 없다”고 말한 바 있다. 주역을 해설해 놓은 ‘주역사전(周易四箋)’을 펴내기도 했는데 이는 다산의 저서 중에서 최고 역작으로 꼽힌다.

김재원 동양고전학자
#임진년#흑룡#주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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