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당신과 내가 날과 씨로 만나서 하나의 꿈을 엮을 수만 있다면 우리들의 꿈이 만나 한 폭의 비단이 된다면 나는 기다리리, 추운 길목에서 오랜 침묵과 외로움 끝에 한 슬픔이 다른 슬픔에게 손을 주고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의 그윽한 눈을 들여다볼 때 어느 겨울인들 우리들의 사랑을 춥게 하리 외롭고 긴 기다림 끝에 어느 날 당신과 내가 만나 하나의 꿈을 엮을 수만 있다면
크리스마스 풍속이 달라진 모양이다. 12월 거리를 달뜨게 하던 캐럴을 도통 들을 수 없었다. 연애 풍속도 달라졌다고 한다. 신자유시대, 그리고 인터넷과 스마트폰 시대가 사람의 심성을 더욱 개인적이고 이기적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우리는 양심이나 정의나 온정이나 애린(愛隣) 같은 말들을 잃어버리고, 그리워한다든가 기다린다든가 하는 정서를 잊어버렸다. 시대의 이 추운 길목에서, 기다림과 그리움이라는 고전적인 정서를 한 올 한 올 지순하고 처연한 무늬와 결로 짜낸 정희성의 시를 읽는다. 고마운 일이다. ‘오랜 침묵과 외로움 끝에’ 손을 내주는,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의/그윽한 눈을 들여다’보는 세계라니, 아름답지 않은가? 그리움과 기다림의 힘차고 그윽한 침묵으로 독자를 따뜻하게 이끄는, 고전미랄까, 묘한 매력이 있는 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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