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대 국회는 새해 예산안 처리와 관련해 몇 가지 새로운 기록을 추가했다. 법정 처리 시한(12월 2일)을 어긴 햇수가 2003년부터 연속 10년으로 늘어났다. 헌정 사상 처음으로 해를 넘겨 처리하는 오명도 남겼다. 다만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5년 만에 처음 여야 합의로 예산안을 통과시켰다. 야당이 극구 반대하거나 저지하는 가운데 여당이 강행 또는 단독 처리하는 나쁜 선례를 깬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헌법은 국회에 예산안을 심의하고 확정하는 권한을 준 동시에 회계연도 개시 30일 전까지 의결하도록 하는 의무도 부여하고 있다. 그러나 국회의원들은 국가의 최고 규범인 헌법을 어기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국회의원이 헌법 규정을 경시하면서 우리 사회에 은연중 법을 무시하는 문화가 조장되고 있다. 법치의 발원지(發源地)여야 할 국회에서부터 법이 제대로 지켜져야 사회 구석구석까지 법치가 흘러넘칠 수 있다.
여야는 올해 5월부터 시행되는 개정 국회법을 통해 예산안의 법정 기한 내 통과를 강제하는 새 장치를 마련했다. 예산안이 법정 기한 48시간 전까지 국회 예결위에서 심사가 완료되지 않으면 본회의에 자동 상정되도록 한 것이다. 여야가 국회 선진화를 위한 자기반성에서 의욕적으로 마련한 제도지만 헌법도 무시하는 판에 하위법인 국회법은 제대로 지킬지 의문이다. 아무리 좋은 제도를 만들어도 지키려는 노력이 없으면 장식에 불과하다.
작년 1년 내내 정치권을 뒤흔든 ‘안철수 현상’은 새 정치에 대한 국민의 갈망을 담고 있다. 허구한 날 정쟁(政爭)으로 지새우다시피 한 국회와 기성 정치권이 안철수 현상의 진원지다. 여야는 대선에서 위기에 몰리자 국회 운영 방식을 바꾸고 국회의원의 기득권을 내려놓는 새 정치를 하겠노라고 국민에게 굳게 다짐했다. 하지만 해를 넘긴 새해 예산안의 늑장 처리 모습을 보면 아직도 갈 길이 멀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지난해 12월 31일 “앞으로 국회를 존중하는 대통령이 돼 야당과 여당이 힘을 합쳐 새 시대를 열어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어느 일방의 노력만으로는 타협의 정치는 불가능하다. 국회법 개정으로 5월부터는 쟁점 의안(議案)의 경우 의결 정족수가 과반에서 5분의 3으로 강화된다. 여당이 야당의 협조를 얻지 못하면 주요 법안을 통과시킬 수 없는 구조다. 그렇다고 야당이 이를 무기로 사사건건 발목 잡기를 한다면 국민으로부터 외면당할 것이다.
박 당선인은 이명박 대통령처럼 의식적으로 ‘여의도 정치’를 멀리하지 말고 의원 개개인을 성심성의껏 설득하는 노력을 다해야 한다. 야당도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협조할 것은 협조하고 견제할 것은 견제해야 책임 있는 대안세력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