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대국화, 군사대국화 하는데 우리가 원하는 건 보통국가예요. 아니, 군대도 없는 나라가 어디 있습니까?”
구라이 다카시(倉井高志) 주한 일본대사관 총괄공사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주창하는 ‘강한 일본’이 결코 군사대국화를 지향하는 게 아니라고 줄곧 강조했다. 지난해 말 한국의 주요 언론사 간부들을 자택으로 초청한 자리에서였다. 9쪽짜리 자료까지 준비한 그는 한국의 여론부터 바꿔보자고 작정했는지 2시간 남짓한 식사시간 내내 화두를 바꾸지 않았다.
“우경화, 우경화 하지만 민족주의 성향을 따지면 일본의 극우도 한국의 좌익보다 약합니다.” 미치가미 히사시(道上尙史) 공보문화원장은 한술 더 떴다. 두 외교관은 “앞으로 중국의 패권주의에 맞서 한일 양국은 협력할 여지가 크다”며 한국 언론의 협조를 신신당부했다.
일본이 중국의 패권주의를 우려하는 것은 이해할 만하다. 중국이 파라셀(중국명 시사·西沙) 군도를 점령한 것은 미국이 사실상 베트남을 포기하기 시작한 1974년이다. 1992년 필리핀 수비크 만에 주둔하던 미군이 철수하자 중국은 1997년 스카버러(중국명 황옌·黃巖) 섬을 차지했다. 이 지역에서 미군이 철수한 틈을 타 약소국 인근의 섬들을 차지한 것이다. 주변국 반발이 거세지자 중국은 지난해 6월 파라셀 군도의 융싱(永興) 섬에 군대를 주둔시켰다. 무력을 사용해서라도 이들 섬을 사수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
근육 힘이 부쩍 커진 중국은 이제 일본에도 고압적인 자세를 보인다. 센카쿠(尖閣)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 분쟁이 대표적이다. 이 과정에서 ‘굴욕’을 느낀 일본인은 지난해 말 아베 정권을 탄생시켰다. 중국에 상대적으로 유화적인 민주당을 심판하고 ‘군사대국’을 만들겠다는 자민당을 선택했다.
하지만 일본의 ‘경제대국 신화’는 아이러니컬하게도 군사대국의 길을 포기하고 ‘평화국가’를 지향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일제를 패망시킨 연합군은 1945년 일본의 전력 보유 금지와 교전권(交戰權)을 불허하는 ‘평화헌법’을 만들었다. 1946년 11월에 공포된 평화헌법 9조는 “국제분쟁 해결수단으로서 무력행사를 영구히 포기하고 어떤 전력도 보유하지 않는다”고 명시했다. 일본은 미국에 영토의 안전을 보장받는 대신 경제성장에만 주력해 1968년부터 42년간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라는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일본 지도부는 ‘군사대국화’란 용어를 가급적 피하고 ‘보통국가화’란 말을 쓰고 싶어 한다. 또 군사대국화를 촉발한 대상으로 중국을 든다. 그러나 일본이 군사대국화를 추진해온 것은 오래된 일이다.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 전 민주당 대표가 군사대국화의 길을 튼 ‘보통국가론’을 주창한 것도 20년 전인 1993년이다. 센카쿠사태는 은밀히 하던 걸 드러내놓고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을 뿐이다.
6·25전쟁 직후인 1954년 사실상의 군대 조직인 자위대를 창설한 일본은 1999년 4월 자위대가 미군을 도울 수 있도록 ‘주변사태법’을 제정했다. 2006년 1월엔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빌미로 방위청을 방위성으로 승격시켰다. 1년 전쯤엔 무기수출 금지 3원칙도 완화하고 평화적 목적으로만 우주개발을 할 수 있다는 법 조항도 삭제했다. 이제는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위해 육해공군으로 나뉜 자위대도 하나로 통합할 예정이다. 군대가 없어 ‘보통국가’도 안 된다는 일본은 세계 6위의 군사비로 세계 4위의 해군력을 보유하고 있다.
이런 일본의 재무장을 세계가 우려하는 것은 당연하다. 특히 일제 치하에서 신음해본 국가라면 더욱 그렇다. 게다가 나치즘을 철저히 분쇄한 독일과의 차이도 크다. 일본은 여전히 전범의 아들이 왕인 나라다. 침략사에 대한 진정한 반성 없이는 이웃국가의 지지는 물론이고 신뢰도 얻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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