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태규의 ‘직필직론’]또 다른 다문화 식구, 돌아온 조기 유학생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월 3일 03시 00분


어린시절 외국생활 몸에 배 가정-직장 곳곳서 갈등-충돌
외국인 끌어안듯 관심 가져야

손태규 단국대 교수·언론학
손태규 단국대 교수·언론학
‘조기 유학.’ ‘기러기 가족.’

어느 나라에서 이러한 용어를 찾을 수 있을까? 수많은 어린이가 초등학교 2, 3학년 때부터 부모 품을 떠나 낯설고 물선 외국에서 학교를 다니는 경우는 다른 나라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현상이다. 아내가 남편을 한국에 홀로 남겨 두고 자식만을 데리고 외국에서 공부시키며 사는 모습도 마찬가지이다. 용감한 한국인만의 독특한 교육열이 아닐 수 없다.

198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조기 유학 열풍으로 20만 명 이상의 초중고교 학생이 한국을 떠난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미국, 캐나다, 영국, 프랑스, 호주, 뉴질랜드, 일본, 중국, 필리핀,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인도, 러시아에다 남아프리카와 중동, 남미까지 한국의 조기 유학생이 가는 나라는 참으로 다양하다.

과연 그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 많은 나라에 흩어진 한국의 아이들은 어떻게 적응했으며 어떻게 성장했는가. 우리는 그동안 한국을 떠난 아이들에 대해서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더욱이 청년이 되어서 돌아온 조기 유학생의 수가 얼마이며, 그들이 한국에 다시 돌아와 어떻게 살아가는지에 대해 감감했다. 그들 가운데 얼마가 미국의 아이비리그 대학 등 세계 명문 대학에 진학했으며, 글로벌 감각을 익힌 덕에 얼마가 세계적인 기업에 취업을 했는지도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부분이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어느 정도가 한국에 돌아왔으며, 어떻게 한국 사회에 적응하고 있는지에 관심을 갖고 대책을 마련하는 일이 훨씬 더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무리 조기 유학 국가에서 대학을 졸업했다 하더라도 취업 등 정착이 쉽지 않은 만큼 유학생 대부분이 한국에 돌아왔으며 지금도 꾸준히 돌아오고 있을 것으로 봐야 한다.

한 국가나 사회의 정체성은 구성원들이 매일의 삶에 부대끼면서 함께 가지는 공통의 느낌과 생각이다. 조기 유학생들이 다른 언어, 교육, 문화 속에서 10∼15년의 성장기를 보낸다면 한국 사회의 문화나 관습을 알고 한국인의 정체성, 한국인의 시민의식을 갖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더욱이 가족과 떨어진 생활에서 한국의 가족 문화, 결혼 문화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일도 쉽지 않을 것이다.

미국에서 러시아에서 남아프리카에서 얼마나 한국을 배우고 익혔겠는가. 홀로 떨어져 또는 아버지가 존재하지 않는 생활 속에서 끈끈한 가족 정서를 제대로 느낄 수 있었겠는가. 그들이 어떤 대학을 나왔으며, 영어를 얼마나 잘하느냐 등의 판단 기준으로 봐서는 안 된다. 그들은 다른 나라에서 살면서 다른 교육과 문화에 익숙해진 사람들이다. 돌아온 그들에게 한국 사회는 삶의 과정에서 도전해야 할 또 하나의 벽이었을 것이다. 그들을 받아들여야 할 한국 사회도 당황스럽고 난감했을 것이다. 갈등과 충돌은 필연이 아닐 수 없다.

30대 중반의 한 직장인은 “연평도 포격 때의 일이다. 10여 년 미국에서 살다 온 동료가 ‘이러다 전쟁 나면 돌아가 버리겠다’라고 말했다. 정말 다른 나라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털어놓았다. 다른 직장인은 “아무리 오랜 외국 생활을 했더라도 남자들은 그래도 군대를 갔다 왔을 경우 어느 정도 한국화했다는 느낌이 든다. 그러나 여성은 거의 다른 나라 사람으로 봐야 한다”라고 말했다.

돌아온 조기 유학생들이 직장에서 느끼는 문화 이질감은 상당하다. 선배 등 호칭에 극도로 민감한 한국 사회에서 편한 대로 호칭하려는 것 때문에 갈등을 빚는다. 왜 그리 단체 회식과 야근은 많은지. 개인 생활 때문에 이를 거부하면 이기적이라고 찍힌다. 폭탄주를 마다하고 “와인만 마신다”라고 하면 서양 물에 젖었다고 욕을 먹는다. 상사에 대한 비판을 공개적으로 하면 세상 물정 모른다고 타박을 당한다.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변하지 않는 권위적, 획일적인 한국의 직장 문화를 거부하는 그들의 행태를 새로운 모습이라고 긍정 평가하기도 하나 적응과 동화는 쉽지 않은 일이다. 이와는 달리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방황하는 조기 유학생도 수두룩하다고 한다.

조기 유학생 이외에 외국 영주권이나 시민권을 가진 교포도 한국에는 적지 않다. ‘검은 머리의 이방인.’ 그들은 모두 그렇게 불린다. 피부색은 같으나 다른 정체성, 의식, 생각을 가진 한국인들끼리의 특이한 문화 갈등과 충돌이 번져 나고 있다. 가족의 분열과 해체도 심각한 문제이다. 기러기 아빠로 10여 년을 보낸 한 60대는 “초등학생 때 아이들을 외국에 보내면서 그들이 내 자식임을 사실상 포기했다. 지금 돌아온 아이들과 늘 서먹서먹하다. 결혼관도 나와는 많이 다르다”라고 말했다.

한국은 더는 단일 민족, 단일 문화의 나라가 아니다. 140만 명 이상의 외국인이 살고 있는 곳이다. 다양한 문화와 인종을 아우르는 다문화라는 말이 익숙한 사회이다. 오래전부터 외국인 거주자를 포용하기 위한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의 정책이 시행되고 있다. 198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외국인 노동자 유입은 산업화를 이룬 다른 나라들도 겪은 일이다.

하지만 20만 명이 넘는 국제결혼 이주 여성은 다른 나라에서 쉬 찾을 수 없는 경우이다. 남녀 비율이 거의 비슷한 상황에서 조선족 신부 또는 동남아시아나 중앙아시아 국가의 신부를 계속 데려오고 있다. 여기에다 50만 명으로 추산되는 조선족 (결혼 이주 여성 5만여 명 포함), 2만5000여 명의 탈북자 등 다른 체제와 문화 속에서 오랫동안 뿌리 내렸던 한민족들이 대한민국을 이루고 있다. 한국은 특이한 정치·경제·역사적 배경 때문에, 주로 인종의 다양성으로 다문화 현상을 언급하는 외국과는 사뭇 다른 모습니다.

외국인 노동자나 국제결혼 이주 여성만이 다문화의 일원이 아니다. 탈북자처럼 돌아온 조기 유학생들도 한국 사회가 끌어안아야 할 다문화의 일원이다. 하루빨리 우리 사회가 관심을 가지고 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다.

손태규 단국대 교수·언론학
#조기유학#기러기가족#다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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