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벽두, 남자가 향한 곳은 서점이었다. 아내와 아이가 동화 코너에 머무는 동안 그는 ‘2013년을 함께할 세 친구’를 찾아 나섰다.
첫 번째 친구는 책. 남자는 책 몇 권을 골라 바구니에 채웠다. 올해에는 기필코 독서가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최소한 일주일에 한 권씩은.
바빠서 책 볼 시간이 없었다는 건 핑계였다. 스마트폰 게임에 빠져 보내는 지하철 출퇴근 시간만 해도 일주일에 열 시간이 넘는데.
몇 주 전이었다. 송년 모임에서 돌아오다가, 문득 ‘이렇게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매일 되풀이되는 일상, 가끔 고개를 들면 익숙하게 다가와 있는 불안. 남들은 앞서가는데 혼자만 뒤처진 것 같고, 지금 잘 살고 있는 것인지 의심스러웠다. 또 한 해를 헛되이 보냈다는 후회가 그런 불안을 더욱 부추겼다. 불안과 함께 눈을 뜨고, 세수를 하면서도 불안의 꼬리를 잡고 고민을 했다.
그러다 결심을 했다. 새해에는 새로운 친구들을 만들어 보기로. 올해도 의미 없이 보내면서 불안에 시달리는 악순환을 거듭하고 싶지는 않았다.
두 번째 친구는 이어폰. 남자는 선물 코너에서 고급 제품을 골라 스스로에게 선물했다. 이어폰 하나면 충분하다. 게임용이었던 스마트폰을 ‘좋은 음악을 들려주는 기계’로 변화시키는 것은.
한동안 멀리했던 음악을 스마트폰에 담아 틈틈이 듣기로 했다. 세상의 온갖 소음과 번잡함을 이어폰으로 차단한 채 혼자만의 풍요로운 세상에 빠져들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어폰이 불안까지 막아주는 것은 아니다. 남자는 불안에 맞서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제는 안다. 불안은 혼자만 느끼는 ‘이상 증상’이 아니었다. 삶이란 모래 위에 위태롭게 서 있는 조형물과도 같다, 누구에게나.
따라서 불안은 이길 게 아니라 받아들여 평생을 함께해야 할 대상이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새해란 곧 ‘새로운 불안’이며, 새해 결심이란 ‘새로운 불안과 동행할 다른 친구들’을 만드는 것일 수도 있겠다.
세 번째 친구는 일기였다. 남자는 두툼한 다이어리를 구입했다. 이제부터는 잠들기 전에 5분이라도 시간을 내어 일기를 쓰기로 마음먹었다. 불안이 어쩔 수 없는 평생의 친구라면, 마주보고 이야기를 들어줄 공간이 필요할 것이다. 일기만 한 것이 없다.
더구나 일기를 쓰는 동안에는 스스로를 돌아보면서 ‘성찰’을 할 수 있지 않은가. 성찰은 대개는 ‘의미’로 연결되기 마련이다.
남자는 손을 흔들며 다가오는 아내를 마주보며 환하게 웃었다. 오늘만은 “괜한 돈을 썼다”며 혼이 나도 괜찮을 것 같았다. 의미 있는 첫날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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