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당신이 사랑에 빠진 바로 그 여자예요. 당신이 싫어하는, 상상 속의 그 여자가 아니에요. 당신을 만나자마자 나의 과거는 사라졌어요. 나는 당신에게서 충만한 새 생명을 받은 새 여자가 되었답니다. 왜 그걸 몰라주나요? 》
19세기 영국의 주요 작가들은 산업혁명으로 인해 각박하고 살벌해진 경쟁사회에서 고갈되어 가는 인간성의 회복을 작가적 사명으로 간주하고 그들의 작품에 훈훈하고 희망적인 결말을 제시하려 애썼다. 하지만 토머스 하디는 그들과 달리 자신의 비관적, 염세적 인생관을 작품에 담아서 19세기 말 영국소설에 일대 전환을 가져온다.
하디는 그의 대표작 ‘더버빌가의 테스’(1891년)에서 착하고 순결한 여주인공 테스가 악의적인 운명과 인간사회의 냉혹한 인습 및 가식적 도덕에 의해 파멸에 이르는 과정을 그렸다. 이는 빅토리아조(1837∼1901년) 영국사회에 대한 탄핵이며 기독교가 표방하는 신의 섭리에 대한 부정이다. 누구나 운명의 장난, 사회의 편견과 박해의 표적이 될 수 있지만 특히 순수하고 고결한 인물은 반드시 표적이 된다는 것이 하디의 확신이다.
테스의 불행은 그녀의 집안이 11세기 이래로 그 지방에서 위세를 떨치던 더버빌가의 후손이라는 사실의 발견과 함께 시작된다. 촌부(村夫)인 테스의 아버지는 이웃마을 목사에게서 명문가 후손이라는 말을 듣고 흥에 겨워 술을 퍼 마시고 어머니는 그 사실을 이용해서 무슨 이득을 볼 수 없을까를 궁리한다. 테스는 만취한 아버지 대신 새벽에 마차를 끌고 벌통을 장에 배달하러 나갔다가 암흑 속에서 마주오던 다른 마차와 충돌해 마차를 끌던 자신의 늙은 말 프린스가 죽어 버리는 사고를 당한다.
가족 생계의 버팀목인 노마(老馬)를 죽였다는 자책감에 시달리던 테스는 트랜트리지의 더버빌가에 가서 친척임을 내세워 도움을 청하라는 어머니의 성화를 이기지 못하고 내키지 않는 걸음을 한다. 트랜트리지의 더버빌가는 멸문된 더버빌가의 이름을 도용하는 벼락부자일 뿐이었다. 더버빌가의 진짜 후손인 테스는 이 가짜들의 집에서 고용살이를 하다가 젊은 주인 앨릭에게 순결을 잃는다. 과한 노동과 심적인 부담 때문에 지쳐 잠든 순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작가 하디는 이 대목에서 “왜 이토록 부드럽고 순결한 여자의 몸에 그토록 조악한 그림이 그려져야 하는가”라면서 통탄한다.
테스는 자기의 상황을 깨닫고 앨릭의 본성을 확실히 알게 되자 그의 집에서 도망친다. 불행은 순결의 상실에 그치지 않고 사생아의 출산으로 이어진다. 테스는 모성애로 수치심을 누르고 아기를 잘 키우려 하지만 아기는 병약해서 얼마 못 살고 죽는다. 슬픔과 수치에 숨죽이고 살던 테스는 어느 날 새 출발을 결심하고 조금 멀리 있는 낙농장에 젖 짜는 일꾼으로 취직한다.
그 목장에 농장 경영을 배우러 와 있던 에인절 클레어는 앨릭과는 대조적인, 지적이고 성실하고 성적인 자제심이 강한, 테스의 이상형의 남자였다. 지상 낙원처럼 싱그럽고 풍성한 농장에서 두 사람은 자석처럼 서로에게 끌리지만 테스는 자기의 과거 때문에 에인절을 애써 피한다. 그러나 부모님의 허락부터 받아와서 줄기차게 청혼하는 에인절의 성화를 당해 내지 못하고 승낙을 하고 만다.
결혼 전에 에인절에게 자기 과거를 고백하려고 여러 번 시도하다 실패했던 테스는 결혼 초야에 에인절이 자신의 ‘이력’을 먼저 털어놓자 용기를 내어 앨릭과의 일을 고백한다. 테스는 에인절에게서 용서와 위로를 기대했으나 에인절은 테스를 순결한 여인의 가면을 쓴 부정한 여인이라면서 별거를 선언한다.
당시 진보적인 지식인으로 지배계층의 인습과 편견에 대해 지극히 비판적이던 에인절은 그러나 남녀 성 모럴의 이중 잣대를 극복하지 못하고 오히려 자신을 피해자로 여기며 브라질로 떠난다. 테스는 떠돌이 삯일을 하다가 어느 척박하고 인심 사나운 농장에 겨우 취직한다. 정신적 슬픔 위에 모진 육체적 고초까지 겪으며 에인절이 돌아와 주기를 기다리지만 액운은 겹쳐서 오는 듯, 친정아버지가 급사하고 어머니와 여섯 동생이 일시에 거리에 나앉게 되는 위기가 온다. 그 직전에 우연히 재회한 앨릭이 테스의 가족을 노숙에서 구해주고 살림을 대주면서 테스에게 열화같이 구애를 한다.
테스는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에인절에게 간절한 서신을 보냈다. 하지만 답장이 없었다. 테스는 죽기보다 싫지만 다시 앨릭의 정부가 된다. 마침내 에인절이 자신의 과오를 깨닫고 영국으로 돌아와 테스를 찾아오니 테스는 앨릭을 살해하고 에인절을 뒤쫓아 간다. 두 사람은 일주일의 꿈같은, 그러나 비장한 신혼생활을 하고 테스는 도피를 포기하고 체포되어 사형을 당한다.
테스의 처형을 알리는 흰 연기가 올라가는 장면에서 작가 하디는 “신들의 두목이 테스를 갖고 놀기를 그쳤다”라고 말한다. 인구(人口)에 회자(膾炙)되는 하디의 운명관이다. 그러나 인간은 운명 앞에 무력하지만 결코 비천하지 않다.
테스 시대의 농촌 처녀들은 일단 ‘몸을 버리면’ 억울하고 원통해도 체념하고 보상을 받아내려 했다. 하지만 테스는 단호히 떨치고 나왔다. 사생아를 낳게 되었어도 혼자 감당했다. 테스는 고생을 회피한 적이 없고 자신을 불행으로 내몬 부모를 희생해서 돌보았다. 남자에 대한 사랑도 지극했다. 에인절을 기다리면서 남자들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 얼굴에 검댕을 칠하고 볼을 동여매고 눈썹을 잘라버리기까지 한다.
세례도 받지 못한 자기의 아기가 갑자기 죽어 갈 때엔 아기의 영혼을 위해 스스로 아기에게 세례를 주었다. 이런 테스의 모습에는 여신(女神)과 같은 기품과 위엄이 넘쳤다. 다시 만난 앨릭이 끈질기게 추근댈 때는 장갑으로 호되게 뺨을 후려치기도 했지만 에인절의 냉혹함은 순순히 감내한다. 자기비하에서가 아니고 그녀의 사랑이 모든 것을 포용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작가 하디는 그토록 순결한 여인을 제물로 만들고 만 당시의 경제 불평등, 계급의식, 성차별적인 성 모럴, 사람을 외적인 잣대로 판단하는 인습, 이 모든 것에 대한 통렬한 항의를 테스라는 아름다운 여인의 결백한 몸에 그려진 조악한 그림을 통해 제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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