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재 기자의 무비홀릭]남자들 판타지를 깬 ‘김태희의 배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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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1월 9일 03시 00분


스포츠동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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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한국 남자는 가수 겸 배우 정지훈(예명 ‘비’·31)에 대해 열등감을 느낀다. 키가 크고 잘생긴 데다 춤도 잘 추고 노래도 잘 부르며 연기도 잘하고 몸도 끝내주며 심지어는 돈도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많은 여성이 정지훈의 매력에 빠져들수록 많은 남자는 정지훈을 시샘하면서 그의 단점을 찾으려 눈에 불을 켜게 되는데, 바로 다소 사려 깊지 못해 보이는 그의 태도를 트집 잡는 일이다.

그래서일까. 나란 남자도 이 칼럼을 통해 배우 정지훈을 일관되게 비판하면서 수많은 여성의 악성 메일에 시달려 왔다. 할리우드 영화 ‘스피드 레이서’에 조연으로 출연해 영어를 훌륭하게 구사한 그를 ‘영어 발음 과잉’이라고 생채기 냈으며, 영화 ‘청연’에서 실존 인물인 한국 최초의 여성 비행사 박경원을 연기한 고(故) 장진영에 대해서는 ‘친일 의혹이 있는 인물을 연기했다’라고 비난하면서도 ‘닌자 어쌔신’에 ‘닌자’로 출연한 정지훈은 유독 ‘월드스타’로 치켜세우는 누리꾼의 이율배반적 태도를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쓰기도 했다.

이번에 여배우 김태희(33)와의 열애설이 불거진 뒤 엉뚱하게도 불똥이 군 복무 중인 정지훈의 복무규율 위반으로 튀며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비화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이번 사태가 정지훈에 대한 남자들의 뿌리 깊은 시기심과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뭐 하나 모자랄 것 없는 ‘전지전능’한 정지훈이, 보통 남자라면 ‘연애와 경력의 단절’을 겪어야만 하는 군 복무 기간에 대한민국 남자들이 가장 흠모하는 여배우와 연애까지 즐기다니….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군생활을 하는 듯 보이는 그는 너무 많은 것을 가진 남자였고, 그를 향한 남성들의 시선은 곱지 않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가 가여운 성장 과정을 딛고 뼈를 깎는 노력으로 스타의 자리에 오른 사실은 어느새 까맣게 잊혀진 것이다.

이번 열애설 탓에 김태희도 이미지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다. 솔직히 말해서 김태희만큼 예쁜 여배우는 국내에 없지 않다. 하지만 그녀는 서울대 출신이라는 강력한 프리미엄을 가지고 있었다. 다시 말해 김태희는 ‘연예인’과 ‘민간인’의 가운데 지점쯤에 절묘하게 위치하고 있었던 것이다. 남자들은 예쁘고 똑똑한 데다 태도까지 다소곳한 그녀를 흠모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녀가 앞으로 어떤 남자를 만나 사랑에 빠질지 무척 궁금해 했다. 그녀라면 뭔가 전혀 ‘연예인스럽지’ 않은 남자, 외모는 영 아니지만 독특한 정신세계를 가진 남자, 아니면 충격적일 만큼 돈도 없고 평범하지만 놀라운 내면을 가진 남자를 만나 운명적인 사랑을 나눌 것으로 남자들은 굳게 믿어 왔다. 그녀가 최근에 출연한 영화 ‘그랑프리’에서 그녀의 연인으로 양동근이 캐스팅된 것도 대중의 이런 발칙한 상상을 자극하기 위한 장치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런 김태희가 진짜 마음을 준 남자가 두 살 연하의 젊고 멋지고 섹시한 정지훈으로 판명나자 나처럼 평범한 한국 남자들은 마치 자기 자신이 김태희에게 버림받은 것 같은 상실감과 더불어 지금껏 품어 온 환상에 대한 격렬한 배신감을 느끼게 된 것이다.

정지훈과 김태희에 대해 한국 남자들이 품는 이런 감정이나 판타지는 결코 논리적이거나 이성적이지 않다. 하지만 말도 안 되는 이런 감정 때문에 대중은 스타에게 열광하고 또 등을 돌린다. 정지훈의 노래 제목대로 ‘부산여자’(정확히 말해 김태희는 ‘울산여자’다)를 만나다가 ‘나쁜 남자’ 취급을 받게 된 그가 과연 ‘태양을 피하는 방법’을 찾을 수 있을까.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
#판타지#김태희#정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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