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편으로 손편지를 주고받던 시절엔 ‘행운의 편지’가 유행했다. ‘이 편지는 OOOO년 영국에서 최초로 시작돼…’로 시작하는 편지에는 100통을 똑같이 베껴 적어서 100명에게 보내면 행운이, 그렇게 하지 않으면 불행이 온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통신수단이 발달하면서 행운의 편지도 좀더 간편하게 진화하고 있다. 요즘 카카오톡 같은 모바일 메신저에서는 ‘이 메시지를 주변의 OO명에게 보내라’는 이른바 ‘행운의 메시지’가 돈다.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는 연말연시를 맞아 ‘행운의 부적’이 인기를 끄는 중이다.
“100억 부자 할머니 손금! 용돈 많이 받게 해주세요.”
‘솔로 탈출 부적’과 ‘소원을 이뤄 주는 부적’ 등 SNS에서 공유되는 부적의 종류는 다양하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단연 인기는 ‘100억 부자 할머니 손금’이라 불리는 새까만 손도장 사진이다. 이 사진은 ‘리트윗(RT·재전송)하는 것만으로도 금전운이 따른다’는 설과 함께 빠르게 전파되고 있다.
사실 이 사진은 2000년대 중반 인터넷에서 ‘포스팅만 해도 금전운이 따른다’며 유행했던 적이 있다. 내용은 같지만 리트윗이라는 새로운 공유 방식이 등장하면서 SNS에서 재조명받고 있는 것이다. 손도장 주인공이 누구인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그 손바닥에 새겨진 M자 모양의 삼지창이 돈을 불러들인다고 누리꾼들은 설명한다.
이 손금 부적이 인기를 얻으면서 ‘100억 부자 할머니 손금-선명한 버전’도 함께 돌고 있다. 누리꾼 사이에 ‘삼성공원묘원 재단 이사장인 김진정 여사의 손금’이라고 알려진 이 손도장을 유심히 살펴보면 ‘원조’ 100억 할머니 손금과 많이 다르다. 그러나 “원조 사진보다 효력이 있다”는 이 손도장 역시 덩달아 인기를 얻고 있다.
이 밖에 100억 부자 할머니보다 더 부자인 미국 부호 워런 버핏의 손 조형물을 찍은 ‘워런 버핏 손금’ 사진과 출처를 명확히 알 수 없지만 머리가 좋아진다는 ‘아인슈타인 손금’도 나왔다.
SNS 부적은 특히 어린 학생들에게 호응이 높다. “손금 리트윗하고 아빠한테 3만 원 받았다” “손금 RT 몇 십 번 했더니 좀 전에 엄마 친구 분이 만 원 주셨다”는 등 10대로 추정되는 이들이 올린 글이 자주 눈에 띈다.
반면 이 SNS 미신의 효능에 대해 실망하는 글도 적지 않다. “부자 할머니 손금이 왜 나한텐 효과가 없을까” “손금 RT 했는데 휴대전화 잃어버렸다”는 등의 불만이 자주 보인다. 또 1000원짜리 지폐 한 장, 동전 몇 개를 찍은 사진과 함께 “손금 리트윗만 일주일째…결과는 이렇다”며 푸념하는 글도 많은 RT를 받았다.
각박한 세상살이에 누구나 한번쯤 요행을 기대하기 마련이다. 과거 수고를 무릅쓰고 ‘행운의 편지’를 부쳤던 것도, 요즘 ‘SNS 부적’을 리트윗하는 것도 모두 인생에서 뜻밖의 행운을 바라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인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손바닥 사진으로 가득 찬 타임라인과, 공돈을 기대하며 수없이 RT 버튼만 누르고 있을 10대의 모습을 상상하면 왠지 씁쓸해진다. “돈이 생긴다면 미신에라도 기대고 싶은 게 사람 욕심이지만 이젠 돈이 생긴다는 RT는 잠시 접고 RT하면 행복해지는 따뜻한 트윗을 써보자”는 한 누리꾼의 말이 유난히 공감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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