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경제부 장관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지식경제부 장관이라고 소개하면 사람들이 압니까?” 장관이 답했다. “우리 국민은 잘 아는데 외국인들이 몰라요. 영어로 된 명함(Minister of Knowledge Economy)을 주면 ‘무슨 일 하느냐’고 되묻곤 하죠. 지식이라는 말 때문에 교육을 담당하는 줄 아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영어 명칭은 산업(Industry)부나 상무(Commerce)부로 하는 방안도 생각해봤어요.” 기자가 토를 달았다. “사실은 우리 국민도 잘 모릅니다. 단 장관을 만날 만한 사람들은 그게 뭔지 압니다. 그래서 장관께서 ‘내국인들은 잘 안다’고 착각하시는 거죠.” 같이 크게 웃었다.
공공기관 명칭은 간결 명확해야
더 우스운 일도 있다. 2008년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한 국제회의에 지경부 공무원이 참석했다. 명함을 받는 사람마다 ‘부처 이름이 왜 그러냐’고 물었고 그 공무원은 설명하느라 진땀을 뺐다. 2년 뒤 같은 사람이 같은 회의에 갔다. 같은 질문이 쏟아지자 대응방법을 바꿨다. “그거 내가 지은 이름이 아닙니다.”
기획재정부의 영어명칭(Ministry of Strategy & Finance)은 전략담당 조직 같다. 그래서 군사나 국가정보 업무를 하는지 묻는 경우가 많다. 우리 국민에게도 기획재정부와 지식경제부는 서로 너무 헷갈린다. 약칭인 기재부 지경부는 거의 암호 수준이다.
정부가 이런 이름을 쓰면 안 된다. 정부는 국민에게 행정서비스를 제공하는 최고의 공적 기관이다. 명칭은 간결 명확하고 쉬워야 한다. 뭐하는 곳인지 알기조차 힘들다면 국민을 골탕 먹이는 일이다. 이래서야 질 좋은 공공서비스가 될까. 아니나 다를까, 이들 부처는 현재 대통령직인수위에서 조직개편 및 개명 1순위로 꼽힌다.
그렇다면 차기 정부에는 그런 부처가 없을까. ‘미래창조과학부’(이하 미래부)는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제시한 ‘창조경제’를 구현할 부처로 현재 인수위가 진행하는 정부조직 개편의 핵심이다. ‘정보통신기술(ICT) 문화 콘텐츠 서비스 산업에 투자를 확대해 새로운 시장과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창조경제론의 철학과 방향은 옳다. 그러나 부처명이 너무 추상적이고 모호하다. ‘국민 눈높이’라는 인수위 정신에 안 맞다. ‘미래’ ‘창조’ ‘과학’처럼 좋은 명사가 세 개나 들어가 자칫 우스갯거리가 될 소지도 있다.
사실 미래부는 기능도 문제다. 국가발전전략과 인재양성, ICT를 기반으로 한 미래성장산업은 물론 일자리까지 담당하리라고 한다. 그렇다면 교육과학기술부의 비(非)교육 분야, 지경부의 기술 서비스 연구개발(R&D) 정책, 기재부의 장기 전략 및 R&D 예산, 방송통신위, 미래기획위, 국가과학기술원의 기능을 두루 갖춘 초대형 블랙홀 부처가 될 것이다. 과학기술계에서는 “미래부가 임기 내에 일자리 창출의 가시적 성과를 내겠다며 욕심 부릴 경우 기초과학은 뒷전이 될 것”이라며 오히려 걱정이다.
5년 후 없어질 부처 만들면 안 돼
국가 장기전략 수립 및 집행을 전담한 모범사례로 박정희 전 대통령이 만든 경제기획원이 있었다. ‘한강의 기적’을 일궈낸 주인공이다. 이후 재무부와 합쳐 재정경제원→재정경제부 →기획재정부로 연신 간판을 바꿔 달았으나 ‘그 덕분에 조직이 효율화됐다’는 평가는 못 들어봤다. 명칭 변경 때마다 기능도 뗐다 붙였다 하면서 뭐 하는 곳인지만 모호해졌다.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정부조직을 뗐다 붙였다 하는 것은 선진국적 모습은 아니다. 꼭 따라할 필요는 없지만 미국의 재무부는 독립할 때부터 지금까지 재무부, 영국은 아직도 ‘여왕폐하의 금고’다. 수십 년 후를 내다보는 부처가 필요하다면 그 부처도 오래갈 수 있도록 조직을 짜야 한다. 지경부, 기재부처럼 다음 정권에서 간판 내릴 부처를 또 만들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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