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되레 사회통합 해치는 사면권 남용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월 10일 03시 00분


청와대가 이명박 대통령의 임기 말 특별사면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설(說)이 사실이었던 셈이다. 박정하 청와대 대변인은 어제 “각계각층에서 공식·비공식적으로 사면을 탄원하거나 요구하고 있어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면 검토의 명분은 대통합이라고 한다. 그러나 박 대변인은 “사면 시기나 대상에 대해 특정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고 말했다. 사면 시기는 2월 25일 퇴임을 고려할 때 설(2월 10일) 전후가 유력하다.

사면은 헌법이 부여한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긴 하다. 특별사면은 김영삼 정부 8차례, 김대중 정부 6차례, 노무현 정부 9차례 등 역대 정권에서 임기 초와 삼일절 광복절 등의 기념일, 임기 말에 관행적으로 실시했다. 이명박 정부에서도 이미 6차례나 있었다. 미국 영국 프랑스 일본 등 선진국에도 사면제도가 있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은 정치자금 제공자로 알려진 탈세도피범 마크 리치를 퇴임 당일 사면해 구설에 오른 적도 있다.

특별사면이 논란이 되는 것은 사회통합이나 국민화합 같은 명분을 핑계로 비리 연루자 가운데 대통령과 가까운 측근이나 정치인 경제인들에게 무분별하게 면죄부를 줘왔기 때문이다. 이번 특별사면에도 이 대통령의 정치적 멘토로 알려진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 대통령의 친구인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 대통령의 처사촌 김재홍 KT&G 이사장이 포함될 것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이들은 작년에 2심 판결 후 대법원 상고를 포기해 특별사면 대상의 법적 요건을 갖췄다. 이 대통령의 형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은 현재 1심 재판이 진행 중이라 형을 선고받은 뒤 항소를 포기해야 대상이 될 수 있다.

생계형 범죄 등으로 인한 고통과 불편을 덜어주기 위한 특별사면 같은 것은 사회적으로 용인될 수 있다. 그러나 비리를 저지른 대통령 측근들에 대한 사면권 남용은 사법부의 독립을 해칠 뿐 아니라 법 집행의 형평성을 깨뜨리고 부패 불감증(不感症)을 키울 위험성이 크다. 평범한 국민의 눈에는 특권층에만 특혜를 베푸는 것으로 비쳐 오히려 사회통합을 저해할 수 있다. 이런 우려 때문에 2007년 사면법을 개정해 사면의 적정성 판단을 위한 사면심사위원회를 설치했지만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대기업 지배주주·경영자의 중대 범죄에 대해서는 사면권 행사를 엄격히 제한하겠다고 공약했다. 대선 출마 당시 “법으로 선고를 받았는데 그게 지켜지지 않고 얼마 있으면 뒤집히는 것이 법치를 바로 세우는 데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비리를 저지른 권력층이나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집행유예나 특별사면 등으로 쉽게 풀려난다면 우리나라는 영영 ‘부패공화국’에서 벗어날 수 없다.
#특별사면#이명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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