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드 인사’ ‘고소영 인사’로 각각 낙인찍힌 노무현, 이명박 정부도 “인사를 망쳤다”는 비판에 할 말이 없지는 않을 게다.
노 정부 때는 잇단 추문으로 인한 고위공직자들의 낙마 속에 총리 입에서 “앞으로 장관 하려면 백로가 돼야 할 것”이라는 자조 섞인 말도 나왔다. 자초한 측면이 크지만…. 정권 출범 초 세게 덴 탓인지 이 대통령은 이것저것 따지다 ‘느림보 인사’로 타이밍을 놓치기 일쑤였다. 이쯤 되면 인사권은 권력이 아니라 스트레스다. 두려움의 대상이 된다. 국회 인사청문회 등에서 한바탕 홍역을 치르고 나면 국정운영 지지율이 3%포인트, 5%포인트 뚝뚝 떨어지니 겁이 날 만도 하다.
이 사람은 이래서 안 되고 저 사람은 저래서 안 되고 하는 ‘소거법(消去法)’식의 소극적 인사를 하게 되는 건 이런 구조 탓이다. 하루 이틀 전 2, 3배수 후보군을 언론에 비공식적으로 흘려 사전검증을 받도록 하는 방안도 실험된 바 있다. 효율적이지 않다는 지적이 나왔다. ‘투서공화국’의 면모가 그대로 드러났다. 좌우로 갈라져 있는 언론 환경상 ‘공론 검증’이 제대로 이뤄지기도 힘들다.
특정 세력의 ‘인사 장난’도 교묘하다. 현 정권의 실세였던 한 인사는 “진짜 밀고 싶은 사람은 2순위나 3순위로 해놓는다. 다른 사람을 1순위로 추천해 놓고 대통령에겐 ‘다 좋은데 이런 문제가 있다’고 보고한다. 동시에 인사검증라인을 통해서도 1순위 후보자의 문제점 보고서가 올라가도록 사전 작업을 해놓는다. 그러면 결국 원하는 사람이 낙점을 받게 된다”고 했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머릿속은 사람 이름으로 가득 차 있을 것이다.
‘밀봉인사’ 논란이 벌어지며 당선인의 인사 스타일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아버지 대부터 인연을 맺어온 명망가 2세들이 유독 눈에 많이 띈다는 점을 지적하는 이도 적지 않다.
노무현, 이명박 정부의 인사 실패에서 반면교사로 삼을 수 있는 키워드가 있다면 ‘오만’이다. 그 오만의 근원이나 실체가 자격지심(노무현 정부)과 500만 표의 착각(이명박 정부)으로 달랐을 뿐이다.
당선인은 우선 ‘수첩과의 대화’에서 한발 벗어나야 한다. 그동안 축적해 놓았다는 ‘인사수첩’이 어느 정도 방대한지 알 수 없으나 ‘나 홀로 인선’을 할 정도인지 의문이다. 다양한 루트로 추천을 받는다고도 한다. 그 루트에 사심이 끼진 않았는지 가려내는 것도 당선인의 몫이다.
이명박 정부에서 2만 명에 가까운 인사파일이 축적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700∼800명은 자료 제출을 요구하면 금방 내놓을 수 있을 정도의 상세한 검증 작업이 이뤄져 있다고 한다. 이 인사파일은 박 당선인의 ‘인사수첩’ 못지않은 새 정부의 자산이 될 것이다.
국무총리 후보자와의 협의를 거쳐 보건복지부 등 당선인이 주요하게 생각하는 몇몇 부처 장관직의 야당 추천을 공식 요청해 보는 것은 어떨까.
인사 보안은 원칙이랄 것도 없다. 보안은 지켜라. 언론은 취재할 것이다. 정치부 기자들에게 인사 기사 경쟁은 ‘피 말리는’ 싸움이다. “특종도 낙종도 없을 것”이라는 윤창중 대변인의 말은 오만의 극치다.
이 대통령의 인사가 꼬인 것은 ‘형님’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데서 시작됐다. ‘페리숑 씨의 콤플렉스’라는 말이 있다. 시간이 갈수록 도움 받은 사실을 과소평가하고 나아가 자신을 도와줬다는 사실 자체를 의심하기에 이른다는 뜻이다. 배은망덕의 묘한 심리를 비꼰 것이지만, 당선인은 친박 실세들에 대한 ‘정치적 빚’에 대해선 페리숑 씨의 심리가 됐으면 한다.
대통령 인사권은 양날의 칼이다. 총구가 전봇대를 한바퀴 돌아 자신의 머리를 겨누는 반전 포스터처럼 어느 순간 잘못된 인사가 정권의 심장을 겨누게 될 수 있다. 꼭 5년 전 조각이 그랬다.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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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10 13:29:23
남보러 오만의 극치라고 그러는 당신이"오만의 극치"가 아니가요. 일반 국민이 보기는 언론도 오만의 극치로 보이는데요. 대변인으로서는 그럴수도 있지않나요. 기자들은 사력을 다해서 취재를 하는것을 막을수 없고 취재가 불편하다고 해서 불통이라고 매도할수도 없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