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혜경의 ‘100세 시대’]‘고독사’를 막는 골목상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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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1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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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몸 노인 위한 거창한 제도보다
이웃의 온갖 이야기가 모여드는 ‘동네사랑방’ 가게부터 활용을

한혜경 호남대 교수·사회복지학
한혜경 호남대 교수·사회복지학
몇 년 전 서울의 오래된 주택가에 살았을 때, 우리가 살던 단독주택으로 들어가는 골목 어귀에는 구멍가게보다 약간 큰 가게가 하나 있었다. 마흔쯤으로 보이는 가게 여주인과 뜨내기 주민이던 우리 부부는 특별히 인사를 하고 지낼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데 어느 초여름, 집에 들어오는 길에 모기향을 사기 위해 가게에 들렀을 때다. 모기향 하나 달라고 하자 여주인은 특유의 무뚝뚝한 표정으로 “아까 사 가셨어요”라고 대답하고는 도무지 물건 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내가 의아해하며 “네?” 하고 반문하자 “아까 아저씨가 사 가셨다니까요”라고 대답하고는 또 딴 손님에게만 열중하는 것이었다. 어찌 보면 참 불친절하기 그지없는 태도였다.

하지만 집에 와 보니 과연 남편이 사다 놓은 모기향이 놓여 있었다. 대형마트에서, 산 물건 또 사는 일에 익숙해 있던 내게 그때 일은 참 인상적이었다. ‘사람 냄새 맡으려면 이런 동네에서 살아야 한단 말이야’ 중얼거리면서 자꾸 웃음이 났던 기억이 난다.

그 일이 있은 다음부터 외출할 때마다 가게 안을 살펴보던 나는 중요한 사실을 발견하였다. 그건 동네 가게가 어르신을 포함한 지역주민들에게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었다. 가게 한쪽에 놓인 조그만 테이블에는 거의 항상 몇 명이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대부분 ‘혼자 사는 뒷집 할머니가 앓아누워 있어서 죽을 끓여 갖다 드렸다’, ‘누구네 집 아들이 이혼하는 바람에 파란 대문 집 부부가 손자를 맡게 되어 요즘 많이 힘들다’ 같은 얘기들이었다.

하지만 이 가게는 정보 교류의 장(場) 그 이상이었다. 태풍과 폭우로 인해 온통 물난리가 났던 어느 날 아침, 한 할머니가 울상을 지으며 하소연을 하고 있었다. “마침 쌀이 똑 떨어졌는데 슈퍼마켓에 아무리 전화해도 갖다 주지를 않아서 어제 저녁부터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는 딱한 사정이었다. 사정을 들은 여주인은 얼른 가게 안쪽에 있는 자신의 집으로 들어가더니 쌀 한 봉지를 들고 나왔고, 가게에서 파는 즉석밥과 라면 등도 함께 챙겨 주었다.

이 광경은 동네의 작은 가게가 골목상권을 보호한다는 차원에서만 중요한 게 아니라는 걸 보여주었다. 즉, 동네의 작은 가게는 주민들의 식생활을 포함한 기본 생활을 보호하고, 타인과의 교류를 통한 사회적 네트워크를 유지하며, 혼자 사는 어르신의 안부를 살피는 구심점 역할도 하는 소중한 ‘사랑방’이었다.

내가 오래전에 살았던 동네의 작은 가게에 대해 이렇게 장황하게 설명하는 이유는 계속되는 ‘고독사’ 뉴스 때문이다. 연말에 서울 강북구 단독주택에서 혼자 살던 왕년의 배구스타 장모 씨가 60세의 나이에 고독사했다는 뉴스가 보도되더니 최근에는 서울 강남구 개포동 한 아파트 안방에서 명퇴와 이혼 이후 혼자 살던 60세 박모 씨가 “물이 샌다”는 아랫집 신고로 사후 보름 만에 발견됐다. 지난해 6월엔 ‘기러기 아빠’로 살아오던 69세 광주 모 대학 명예교수가, 최근에는 경남 마산에서 혼자 살던 65세 여자 어르신이 고독사했다.

이런 뉴스를 들을 때마다, 거대한 도시 한구석에 고립된 채 ‘마을’에 대한 감각을 잃어버리고 살아가는, 그래서 동네의 작은 가게와도 연결되지 못한 채 혼자서 시름시름 앓다가 죽어가는 현대인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문제는 고독사가 앞으로 더욱 많아질 것이라는 점이다. 혼자 사는 노인 가구를 포함해 1인 가구의 비율이 크게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통계청의 최근 자료에 따르면, 현재 1인 가구는 453만9000가구나 되어 전체 가구의 25.3%를 차지하며, 2020년에는 30%에 달할 것으로 추계되었다.

더 심각한 건 고독사가 ‘홀몸노인’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일본의 최근 자료에 따르면, ‘고독사 위험군’에 혼자 사는 노인 외에도, 50대나 60대 초반의 연령층으로 정년퇴직했거나 직업이 없고 이웃과의 교류도 부족한 독거남, 만성질환을 앓고 있으면서 아파트 등에 혼자 사는 중장년층도 포함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50대나 60대 초반 남자들이 우리나라에서 ‘복지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이유는 대부분의 복지 서비스가 ‘65세’라는 연령을 기준으로 제공되기 때문이다. 현재 혼자 사는 65세 이상 노인에 대해서는 ‘독거노인 돌봄기본서비스’ ‘독거노인 응급안전돌보미서비스’ ‘독거노인 사랑잇기서비스’ 등을 통해 정기적으로 안전을 확인하는 등의 사회안전망이 구축되어 있지만 이 연령대에 들지 못하는 50대나 60대 초반의 독거인들에 대한 관심은 거의 없는 실정이다.

1970년대부터 이미 고독사 문제가 부각되었던 일본에서는 2007년부터 ‘고립사 제로(zero) 프로젝트’를 시행하고 있다. 전국의 지방자치단체가 급성질병 통보 장치를 만들고, 전기 및 가스 사용을 확인하여 안부를 살피는 시스템을 정비하고, 장기요양서비스와의 연계를 통해 독거인들의 상태를 확인하고 있다.

기초자치단체 차원에서도 ‘혼자서도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지역사회’를 조성하기 위해 1인 가구를 방문하고, 노인이 많이 사는 아파트 단지 내에 ‘안심카페’를 운영하여 함께 차를 마시면서 상담도 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고독사 문제를 예방하고 해결하기 위한 여러 가지 정책적, 제도적 노력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하지만 어떤 거창한 제도나 조직을 만드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오랜 세월을 거쳐서 자연스럽게 피어난 골목 안의 ‘사랑방 네트워크’를 소중히 여기고 활용하려는 마음이 아닐까. 오래된 소중한 가치들을 다 무너뜨리고 난 다음에 뭔가 또 새로운 것을 만들겠다고 수선을 떠는 비효율적인 복지행정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란다.

오랜 세월을 함께한 동네 사람들과, 언제라도 달려가서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작은 가게가 있는 마을이 한층 그리워지는 요즘이다.

한혜경 호남대 교수·사회복지학
#골목상권#고독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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