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아와의 접경지역인 터키 안타키아 시의 한 시리아 난민학교. 교실 벽에는 비행기가 폭격하는 장면, 군인이 주민들에게 발포하는 장면, 집이 불길에 휩싸이는 장면 등을 그린 아이들의 그림이 걸려 있다. 온통 붉은색이다.
300여 명의 아이들이 공부하고 있는 이 학교의 무스타파 샤크르 교장은 최근 미국 워싱턴포스트에 “아이들의 머릿속은 붉은색으로 가득 차 있다. 이렇다 보니 그림 전체를 붉은색으로만 그리는 경우도 많다”고 설명했다. 미국 공영 라디오 NPR는 “터키 내 시리아 난민 어린이 4명 중 3명은 내전으로 가족을 잃었고, 아이들의 절반은 심각한 트라우마를 갖고 있다”고 전했다. 끔찍한 경험을 한 아이들의 가슴에는 적개심과 미움이 넘친다. 채 열 살도 되지 않은 한 소녀는 “아사드(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를 죽이는 게 꿈”이라고 한다.
시리아에 남아 있는 아이들의 삶은 더욱 끔찍하다. 8000여 명이 거주하고 있는 시리아 밥알살람 난민촌의 어린이들은 추위와 굶주림에 생명을 위협받고 있다. 한 난민은 “어린 딸은 평소처럼 밤늦게까지 놀다가 잠이 들었다. 아침에 눈을 떠보니 추위에 몸을 잔뜩 웅크린 채 숨져 있었다”고 CNN에 털어놨다. 아침 해가 뜨면 아이들은 풀을 뜯어 먹으며 허기를 달랜다. 이미 약 50만 명의 시리아인이 해외로 도피했고, 시리아 내에도 200만 명 이상의 난민이 흩어져 있다.
9일에는 중부 홈스 인근에서 정부군의 폭격으로 생후 7개월∼16세의 4남매가 한꺼번에 숨졌다. 지난해 11월에는 정부군이 반군 지역 학교 운동장에 폭탄을 떨어뜨려 10여 명의 아이들이 목숨을 잃었다. 5월 훌라의 학살 현장에서 발견된 108구의 시신 가운데 어린이가 49명이었다.
시리아 정부군이 반군의 공격을 막기 위해 어린이들을 ‘인간 방패’로 쓰기도 한다고 유엔은 지적했다. 반군에게 커다란 공포감을 주기 위해 친정부 민병대가 어린이와 여성을 골라서 학살한다는 증언도 있다.
시리아 내전은 1971년부터 43년째 부자 세습 독재를 이어오고 있는 아사드 대통령에 대한 반발에서부터 비롯됐다. 2011년 3월부터 계속되고 있는 내전으로 인한 사망자가 6만 명에 달한다고 유엔이 3일 발표했다.
그럼에도 아사드 대통령은 6일 물러날 뜻이 없다는 점을 분명히 밝혔다. 반군을 향해 화학무기를 사용할 준비까지 마쳤다는 소식도 들린다. 이슬람 시아파로 구성된 시리아 현 지도부를 ‘시아파의 맹주’ 이란이 지지하고 있고, 시리아에 친서방 정권이 들어서는 것이 달갑지 않은 러시아와 중국도 미적지근한 태도를 보이고 있어 내전은 길어지고 있다.
내전이 끝난 뒤에도 아이들의 뇌리에 깊이 새겨진 ‘핏빛’은 오랫동안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어른들의 싸움에 죄 없는 아이들의 삶이 파괴되는 일이 더는 없어야 한다. 천진난만한 여섯 살 아들을 키우는 아빠로서 더욱 마음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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