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賞)은 원래 사후(事後)에 주는 반대급부다. 공적(功績)이나 선행, 실력, 능력, 노고 등에 대한 긍정적 평가가 상으로 구체화되는 것이다. 공적을 세우라고, 선행을 행하라고, 실력을 발휘하라고 미리 상을 주는 법은 없다. 주는 목적과 이유도 분명해야 한다. 상이 제 가치를 갖기 위한 최소한의 원칙이다. 정도전은 ‘삼봉집’에서 “상벌이 개인의 감정에 따라서는 안 되고 반드시 공적(公的)인 데(사실에) 입각해야 하며, 국가의 안위와 사회적 가치의 구현을 위해 상이 벌의 대응 개념으로 장려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우리나라 최고의 훈장으로 꼽히는 무궁화대훈장은 상당 기간 이런 원칙과는 거리가 있었다.
▷무궁화대훈장은 대통령과 그 배우자가 받는 훈장이다. 전·현직 우방국 원수와 그 배우자도 받을 수 있으나 논외로 하자. 문제는 현직 대통령과 그 배우자가 이 훈장을 받는 방식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 때까지는 취임과 동시에 이 훈장을 받았다. 신임 대통령이 이 훈장을 패용한 채 취임식을 거행하기도 했다. 신임 대통령이 아직 단 하루도 소임을 다하지 않은 상태에서 상훈법상 ‘대한민국에 공로가 뚜렷한 자’에게 주도록 돼 있는 훈장을 받는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혹시 대통령선거에서 열심히 싸워 이긴 것을 축하하기 위한 의미라면 모를까.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이 관례를 깬 것은 잘한 일이다. 그는 당선인 시절 “취임식 때보다는 5년간의 공적과 노고에 대해 국민으로부터 치하 받는 의미에서 퇴임과 함께 받는 것이 타당하다”며 사양했다. 그는 퇴임 직전에 이 훈장을 받았다. 그러나 퇴임을 앞둔 대통령이 스스로 자신의 공적을 치하해 훈장 수여를 의결함으로써 본인이 본인에게 훈장을 주고받는 모양새가 돼 이 또한 이상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세간의 시선도 곱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노 전 대통령과 같은 처지에 놓인 이명박 대통령의 고민이 많은 모양이다. ‘셀프(self) 훈장 수여’를 하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다른 방법도 마땅찮고….
▷퇴임하는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임기 말 인기와 상관없이 국정 최고책임자로서 5년간 밤낮없이 노심초사해온 노고와 희생에 대해 합당한 예우를 해주는 것은 국민의 도리다. 그렇다면 이번 기회에 무궁화대훈장 수여 방식을 바꿔보는 것은 어떨까. 신임 대통령이 취임식 때 국민을 대신해 퇴임 대통령의 목에 훈장을 걸어주고 노고를 치하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렇게 하면 훈장 수여의 취지에도 맞고, 모양새도 좋지 않겠는가. 시대적 화두(話頭)인 국민 통합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박근혜 당선인이 결심만 한다면 이번부터 당장 못할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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