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도준호]차기 정부 방송통신정책 어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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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1월 14일 03시 00분


도준호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
도준호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
영국의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의 발표에 따르면 대한민국의 정보기술(IT) 산업경쟁력 지수는 2008년 8위에서 지난해 19위로 하락했다. 굳이 해외 기관의 평가지표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이명박 정부에서 정보통신기술(ICT) 분야가 제대로 탄력을 받아서 성장하지 못했다는 점은 많은 이가 지적하는 부분이다. 이명박 정부의 ICT 정책 실패는 새로 들어설 차기 정부에 반면교사가 될 수 있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였을까.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먼저 ICT 관련 정책 업무가 지나치게 많은 부서에 분산돼 제대로 조정하기 어려웠다는 게 문제다. 이명박 정부는 ICT 관련 업무를 방송통신위원회, 지식경제부, 행정안전부, 문화체육관광부로 분산시켜서 다양한 영역에서 ICT 정책을 수행하고자 했다. 이렇게 여러 부처에서 ICT 정책의 일부분을 추진하다 보니 전체적으로 큰 그림을 보고 정책의 중요도를 판단하기 어려웠다. 또 부처 간에 잠재해 있는 영역 다툼과 갈등으로 협업을 통하여 어렵지만 중요한 과제를 추진하는 동력도 찾아볼 수 없었다. 부처에 따라서는 본연의 업무 영역과 비교해 ICT 정책의 우선순위가 현저하게 떨어져 제대로 된 관심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발생했다.

다음으로 IT 정책의 주무부처인 방송통신위원회 운영에서 문제점을 찾을 수 있다. 방송통신위원회는 방송통신 융합 추세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설립됐다. 전문성을 갖춘 위원들이 합의제를 근간으로 하는 위원회 조직이었다. 하지만 지난 5년간 드러난 방송통신위원회의 한계는 너무도 극명해 이례적으로 방송통신위원회 스스로 변화가 불가피함을 피력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전문가 간에 복잡한 현안을 풀어 내고자 했던 합의제가 신속한 정책 결정을 요구하는 스마트 미디어 시대에 실기하는 원인이 된 측면이 있다. 또한 종합편성채널 허가와 같은 방송 정책 이슈가 정치적 대결 구도에 매몰되는 바람에 다른 분야에 대한 정책을 제대로 펴지 못했다.

그렇다면 과연 방송통신 정책 추진을 정상화하고 시들해진 ICT 산업의 성장 동력을 되살릴 해법은 무엇인가. 문제 진단에서 드러났듯이 ICT 정책을 통합해 추진할 조직의 설치가 불가피하다. 많은 전문가가 분산된 ICT 정책을 통합적으로 추진할 전담 부처의 설치를 요구하고 있다.

ICT 전담 부처 설치 필요성에 공감하지만 이것이 모든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만병통치약처럼 논의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차기 정부가 스마트 시대를 이끌어 갈 확고한 미래 비전과 철학을 갖추어야 한다는 점이다. 정보통신부의 부활을 연상시키는 ICT 전담 부처의 신설로는 스마트 환경에 제대로 대처할 수 없다. 유치 산업 단계의 제조업을 지원하듯 ICT 진흥 정책을 추진해서는 곤란하다.

이제 차기 정부는 방송과 통신 영역의 생태계 전반을 아우르는 비전과 통찰력을 보여 주어야 한다. 전담 부처의 설치가 관련 영역의 규제로 이어질까 봐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다. 분명한 것은 규제보다는 민간 영역이 필요로 하는 부분에 합리적인 지원을 해 줄 수 있는 정부 체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미래창조과학부에 ICT 정책 기능을 더하자는 목소리는 우려스럽다. 장기적 관점의 투자가 필요한 과학 분야와 급변하는 스마트 환경에 대처해야 하는 ICT 정책 분야를 함께 다루면 지원이 제대로 이루어지기 어렵다. 기초과학과 스마트미디어 관련 정책의 접근 방식과 수행에 요구되는 핵심 역량에는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사회적 합의와 공적가치가 중요시되는 방송 영역에서는 독립성이 확실히 보장되는 별도의 방송 규제 기구 설치가 필요하다.

도준호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
#정보기술#방송통신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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