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한 스포츠 스타가 여자친구와 함께 호텔 수영장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사진이 공개되면서 많은 미혼 여성이 충격에 휩싸였다. 그는 동글동글한 얼굴에 눈이 예뻐 ‘국민 훈남’으로 불릴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개중에는 이 스타가 ‘열애설’을 부인해주기를 바라는 이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사진이 공개되자 열애 사실을 솔직히 인정했다.
지금은 채식주의자로 더 유명한 섹시 여가수도 비슷한 경우다. 그는 재벌 2세도, 톱스타도 아닌 ‘평범한 음악인’ 남자친구와 사귄다는 사실을 전격 인정하고, 나중에는 고백을 하게 된 사연까지 솔직히 털어놨다. 한 연예매체에 남자친구와 안고 있는 사진을 찍혔고, 이를 공개하지 않는 조건으로 열애를 인정하기로 했다는 비하인드 스토리였다.
스타들이 예전과 달리 열애 사실을 쉽게 인정하는 건 유독 이 두 스타의 성격이 ‘쿨’해서만은 아니다.
우리는 지금 비밀이 없는 시대를 살고 있다. 2006년 12월 폭로 전문 사이트인 위키리크스의 등장은 중요한 계기 중 하나를 제공했다. 위키리크스는 정치, 외교 분야의 공문서뿐만 아니라 기업들의 비밀문서까지 빼내 폭로에 나섰고 그 파장은 어마어마했다. 창업자 줄리언 어산지가 “미국의 대형 은행 관련 문건을 폭로하겠다”고 하자 ‘그 은행’으로 소문난 뱅크오브아메리카(BoA)의 주가가 단숨에 7%나 폭락한 게 2010년 말의 일이다. 나중에 해당 문건이 별 볼일 없는 것으로 판명나면서 BoA 주가는 회복됐지만 기업들은 언제, 어떤 비밀이 폭로될지 긴장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지금은 위키리크스와 비슷한 사이트가 더 많아졌다. 굳이 거창한 사이트일 필요도 없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보편화하면서 아주 평범한 개인도 엄청난 파장을 불러올 수 있는 ‘폭로’를 손쉽게 할 수 있는 세상이 됐다.
이 같은 상황 변화에 대해 기업들은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미국의 대표적인 자동차 메이커인 제너럴모터스(GM)는 2008년 ‘GM 사실과 허구’라는 사이트를 열었다. 고객이 GM 관련 루머를 블로그에 올리면 회사 측이 관련 자료를 직접 공개하면서 설명을 한다. ‘나쁜 뉴스’를 양성화해서 음지에서 커가는 힘을 차단한 것이다.
이젠 대부분의 회사가 페이스북, 트위터, 유튜브를 통해 좋은 뉴스뿐만 아니라 나쁜 뉴스도 공유한다. 소비자들이 기업에 불리한 글을 올려도 해명만 할 뿐 함부로 지우지 않는다. 열애 사실을 인정한 스타들과 마찬가지로 ‘쿨’해서라기보다는 비밀은 지킬 수도 없고, 나아가서는 공개하는 게 더 유리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악의적으로 기업에 해를 끼치는 ‘블랙컨슈머’ 문제가 불거지기도 하지만 치러야 할 비용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기업계와는 달리 정치권에선 아직도 지켜야 할 비밀이 많고, 지켜질 수 있다고 믿는 모양이다. 특히 차기 정부를 준비하는 핵심 인사들의 말과 태도가 연일 도마에 오르고 있다.
이정현 당선인비서실 정무팀장은 “나는 외과 수술로 입을 봉해 버렸다”는 극단적인 표현을 써가며 기자들과 ‘불통(不通)의 벽’을 쌓았다. “선배 기자로서…”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윤창중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대변인은 “내가 인수위의 단독기자”라는 말로 화제가 됐다. 인수위로 파견 간 공무원들도 구내식당에서 기자들과 만나면 애써 눈길을 피한다. 기자와 함께 있는 모습만 들켜도 ‘경을 칠 수 있다’는 분위기 탓이다.
물론 정부가 모든 정보를 공개할 수는 없다. 그래도 정보의 유통 자체를 차단하거나 알리고 싶은 정보만 알리는 건 시대에 너무 뒤떨어진 행동이다. 불리한 점을 자기 입으로 말하면 손해일 것 같지만 실은 더 이득이라는 ‘투명성의 패러독스’를 곱씹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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