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서울 중구 대한문 앞에서 열린 대통령 선거 재검표 요구 촛불집회에서 ‘북한 글씨체’를 사용한 플래카드가 나왔다는 주장이 제기돼 SNS를 달구고 있다. 당시 집회를 생중계하던 한 인터넷 방송 화면을 일부 누리꾼이 캡처하면서 논란이 가열됐다. 플래카드에는 ‘전자개표기 무효! 수(手)개표 실시하라!!’(사진)라고 적혀 있다.
글자체가 북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누리꾼들은 “우리나라 컴퓨터에는 들어있지 않은 북한의 ‘광명납작체’라며 “(시위대에) 종북 세력이 연결돼 있다는 증거”라고 주장했다. 광명납작체는 북한의 선전 매체인 TV 자막에 주로 사용되는 전형적 북한 글씨체다. 논란은 오프라인으로까지 번져 14일 새누리당 심재철 최고위원이 최고위원회의에서 집회 현수막 사진을 들어 보이며 “일반인이 흔히 사용하거나 내려받을 수 있는 글자체가 아니다”라며 수사를 촉구했다.
이 같은 주장에 반대하는 누리꾼들은 “투표 재검표 주장까지 종북 세력으로 몰아붙이느냐”라며 “물 타기 좀 그만하라. 엄연한 한글을 왜 북한체라고 몰아붙이느냐”, “영어 글씨체 쓰면 무조건 친미파냐. 인터넷에서는 전 세계 글씨체를 다 내려받아 쓸 수 있다”라고 반박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또 “북한 글씨체를 쉽게 가져다 쓸 수 있다는 남한 신문 기사도 있었다”라고 주장한다. 이들이 제시한 기사는 2011년 7월 ‘복고바람 타고 북한 서체, TV 자막까지 등장’이란 제목의 기사. 기사에는 ‘(한국 내) 복고풍 버라이어티 방송에 북한 폰트인 옥류체가 사용됐다. 옥류체는 2000년대 중반 남북 폰트디자인 교류를 통해 국내에 소개된 북한 서체’라는 내용과 함께 ‘북한 폰트는 인터넷 P2P사이트를 통해 누구나 다운받아 사용할 수 있다’라고 되어 있다.
과연 진실은 뭘까.
글자체 전문가들에게 직접 물어보니 우선 12일 시위에 쓰인 글자체가 ‘광명납작체’일 가능성이 크다는 데 동의했다. 또 “인터넷에 흔히 떠돌아다는 글자체가 아니어서 내려받기가 ‘쉽지는’ 않다”라는 견해가 많았다. 그렇다면 이번 글자체는 혹시 2006년부터 3년간 있었던 남북글자체 공동연구모임에서 흘러나온 것은 아닐까. 당시 남한 측 연구팀을 이끌었던 노수용 한글미디어디자인연구소 소장에게 물었다.
그는 “당시 남북 디자이너들의 공동연구 결실로 2009년 ‘정음체’가 출시됐다. 이는 국내에도 무료 보급됐다. 하지만 정음체와 광명납작체는 디자인이 엄연히 다르다”라고 했다. 정음체가 아니라면 혹 당시 연구 과정에서 북한의 또 다른 글자체들이 유통된 것은 아닐까. 이에 대해 노 소장은 “북측에서 글자체 400여 종을 주긴 했지만 순수 연구 목적으로만 쓰였고, 외부로 유출된 적은 없다”라고 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걸까. 노 소장은 “대북 사업체들이 북한의 글자체를 쓰다가 남한으로 가져왔다는 추측은 해볼 수 있다”라고 했다. 그렇다면 이들이 가져온 글자체를 일반인들이 내려받았을 가능성은 열려 있는 셈이다.
어떻든, 시위자들은 억울할 수 있다. 달을 가리켰는데, 왜 엉뚱한 손가락 끝을 보느냐고 말이다. 하지만 궁금증이 남긴 남는다. 왜 하필 그 수많은 글씨체 중에서 유독 그것을 골랐을까. 한글의 바탕이나 굴림체보다 딱히 세련되어 보이지도 않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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