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박용]공식 폐기된 가족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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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1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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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개봉한 ‘잘살아보세’는 1970년대 가족계획을 소재로 한 코미디 영화다. 전국 최고의 출산율을 자랑하는 용두리 마을을 무대로 ‘출산율 제로’에 도전하는 보건소 여성 가족계획 요원(김정은)의 분투기다. 마을 사람들은 콘돔이 어디에, 어떻게 쓰는 물건인지도 모른다. 정관수술을 받던 이장 변석구(이범수)는 의사에게 “작동은 되겄쥬∼”라고 묻는다. 그토록 피임에 무지했던 마을 사람들은 40여 년 전 한국인의 평균적인 모습이다. 영화 속 가족계획 요원도 보건사회부가 1963년부터 각 보건소에 실제로 파견했던 공무원이 모델이다.

▷가난에 시달리던 1960년대는 ‘58년 개띠’처럼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입’이 큰 걱정이었다. 1960년 인구 증가율은 3%, 가구당 평균 자녀 수는 6.3명이나 됐다. 전후(戰後) ‘베이비 붐’(1955∼1963년)을 잠재운 건 1961년 5·16군사정변으로 집권한 박정희 정부였다. ‘잘살아보세’라는 구호를 앞세워 1962년부터 강력한 인구 억제 정책을 펼치기 시작했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도 인구 증가율 억제 목표를 넣었다. 셋만 낳자는 얘기가 나오기 시작했고, ‘덮어놓고 낳다 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는 표어도 이 무렵에 등장했다.

▷1970년대에는 ‘아들 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 1980년대에는 ‘하나씩만 낳아도 삼천리는 초만원’이라는 표어가 거리와 공중 화장실에 넘쳐났다. 1977년 아파트 입주 신청에 불임 수술자를 우대하기로 하자 50, 60대 남성까지 수술을 받으러 보건소로 몰려들었다. 예비군 훈련장에서는 정관수술을 받으면 훈련을 빼줬고 기업들이 수입하는 피임약에는 관세도 물리지 않았다. 드디어 1988년 인구 증가율은 1%로 떨어졌다. 정부는 1994년 산아 제한 정책을 중단했다.

▷정부는 15일 국무회의를 열고 보건소의 가족계획 업무(산아 제한과 피임 교육 등)를 삭제하는 내용의 ‘농어촌 등 보건의료를 위한 특별조치법’ 시행령 개정안을 의결했다. 유명무실해진 가족계획 업무를 공식 폐기한 것이다. 정부는 1983년 합계출산율이 인구 현상 유지가 가능한 2.1명 이하로 떨어졌는데도 1990년대 중반까지 출산을 억제해 정책 전환의 타이밍을 놓쳤다. 이제는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늙어가는 나라가 됐다. 1960년대 ‘3·3·35’(3명의 자녀를 3년 터울로 35세까지만 낳자) 구호는 ‘1·2·35’(결혼 후 1년 안에 임신해서 2명의 자녀를 35세 이전에 낳자)로 바뀌었다. 한창 일할 젊은이가 줄고 복지 수요가 큰 고령자가 늘면 나라 곳간도 금세 바닥난다. 아버지처럼 ‘다시 잘살아보세’라는 구호를 내건 박근혜 정부의 ‘21세기형 가족계획’ 카드가 궁금하다.

박용 논설위원 parky@donga.com
#가족계획#인구 억게#고령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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