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카페 ‘레몬테라스’는 결혼 육아 인테리어 등 각종 살림정보가 오가는 곳이다. 소위 ‘예신’(예비신부)이라 불리는 결혼 예정자라면 한 번쯤 가입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회원만 200만 명이 넘는다.
이곳의 인기 메뉴는 ‘마이홈 자랑’이다. 말 그대로 ‘셀카’를 찍듯이 카페처럼 꾸민 집 구석구석을 자랑하는 곳이다. 그러면 ‘저 가구는 어디 제품이냐’ ‘어느 업체에서 했나’ 등을 묻고 답하는 댓글이 이어진다. 인테리어 업체를 통해, 혹은 혼자 꾸민 집들은 하나같이 북유럽 인테리어 잡지의 화보처럼 근사하다. 반응이 좋으면 유명 잡지에 소개되기도 한다.
처음에는 얼굴도 모르는 타인의 집을 볼 수 있어 마냥 흥미로웠다.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요즘, 누군가의 가정집을 들여다볼 기회는 흔치 않다. 더욱 흥미로운 건 이곳의 많은 집이 전세라는 점이다. 자기 소유가 아닌 집에 시간과 비용을 들여 욕실을 개조하고 멀쩡한 조명까지 바꾸다니…. 누군가는 돈 낭비라고 여길 수 있다.
‘마이홈’을 자랑하는 사람들의 생각은 다르다. 이들에게 내 집 마련은 당장 계획에 없거나 막연한 미래에 가능한 ‘위시리스트’일 뿐이다. 대신 아일랜드 스타일의 부엌에 어울릴 테이블웨어를 고르는 게 더 중요하다. 어차피 사지 못할 집, 사는 동안만큼 그럴듯하게 꾸미면서 당장의 행복을 누리자는 것이다.
독일 칼럼니스트가 쓴 ‘완벽주의자의 함정’이라는 책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이제 중요한 것은 무엇을 소유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소유하느냐가 됐다. 사람들이 ‘더 빨리, 더 많이, 더 크게’에서 벗어나 소유보다 존재를 중요시하게 됐으며 출세가 아니라 자족적인 지금 여기에 있음을 삶의 모범으로 여기고 있다.” 내 집을 갖겠다고 무리한 대출을 받는 것보다 전셋집을 근사하게 꾸며 행복을 느끼는 게 합리적으로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내 집이 ‘쇼룸(showroom)’처럼 아름답게 변하는 건 이런 이유로 정당화된다.
‘가정집의 쇼룸화’는 새로운 현상을 만들고 있다. 호텔 스타일의 침실이 최신 유행으로 자리 잡고 수백만 원짜리 건식(乾式) 욕실 세트가 품절되고 있다. ‘집들이’라는 용어는 ‘홈파티’로 대체되고 있다. ‘집들이’가 내 집 마련이나 넓은 집으로 옮긴 걸 축하하는 자리라면 ‘홈파티’는 지인을 초대해 가볍게 와인 한잔 기울이는 자리다. 단, 파티에 걸맞은 음식과 주인의 취향을 드러내는 인테리어는 기본 요건이다.
흔히 럭셔리 산업은 의식주(衣食住) 순으로 발달한다고 한다. 입고 먹는 것에 쏟아 부었던 돈과 관심이 조금씩 사는 집으로 향하고 있다. 패션 브랜드들도 앞다퉈 라이프스타일 산업에 진출하고 있다. 문제는 아름다운 나의 집이 ‘즐거운 나의 집’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 남들과 달리 특별해지고 싶은 욕구는 빨래집게 하나를 고를 때도 브랜드를 따지게 만든다. 옆집처럼 꾸민 서재의 의자는 근사하지만 불편하다. 집안의 소소한 소품마저 나를 특별하게 보일 수 있다고 믿게 된 탓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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