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정양환]그들의 전성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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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1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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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양환 문화부 기자
정양환 문화부 기자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지난해 말 특집호에 황당한 기사 하나를 실었다. 2012년을 결산하며 “올해는 킴(Kim)들이 지배”했노라 단언했다. 여기서 킴은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과 미 여배우 킴 카다시안을 일컫는다. 한 명은 북한의 새 지도자가 됐고, 다른 이는 미국 미디어를 통치했단다.

타임이 보기에 이들은 공통점이 많다. 배우자가 가수 출신이고, 둘 다 ‘섹시 아이콘’으로 뽑혔다. 물론 김 위원장은 한 매체의 조소였다. 중국 언론은 정색 보도했지만. 유명한 부친(로버트 카다시안은 OJ 심슨의 변호사)과 무기 선호 취향, 지난해 미사일 혹은 패션 브랜드 ‘론칭 파티’를 선보였단 면도 닮았다. 게다가 놀라지 마시라. 김 위원장의 트위터가 유일하게 팔로하는 인물이 카다시안이다.

이쯤 되면, ‘여제 킴’이 어떤 인물인지 궁금해질 터. 타임의 경쟁지 뉴스위크도 도대체 왜 그리 미국인들이 난리인지 의문이 들었나 보다. 최신호에 “킴이 미국을 접수한 미스터리를 파헤치다”란 기사를 내놓았다.

1980년생인 이 연예인은 사실 배우라 부르기도 난감하다. 데뷔 10년이 넘었는데, 개봉예정작을 포함해 달랑 영화 4편에 출연했다. 대부분 그해 ‘최악의 연기’로 꼽혔다. 뭇매를 비껴간 작품은 2003년 불법 유출된 섹스비디오뿐이다. 대중은 그녀를 피해자라 안쓰러워했지만, 뒤에 조용히 유통제작사와 합의해 500만 달러(약 53억 원)를 챙겼다.

이렇게 눈도장을 찍은 그의 사교계 정복은 2007년 리얼리티 TV쇼 ‘키핑 업 위드 더 카다시안(Keeping Up with the Kardashians)’부터 본궤도에 오른다. 카다시안가(家) 들여다보기쯤으로 해석되는 이 방송은 뉴스위크 표현대로 참 “당황스럽다(baffled)”. 요즘 말로 ‘듣보잡(듣도 보도 못한 잡놈)’이던 카다시안과 자매들은 상류층 인사마냥 굴며 실제 연애와 결혼, 불륜 등 말초적 내용을 세세히 공개해 엄청난 인기를 누린다. 심지어 최고급 애완견을 고르는 ‘별것 없는’ 에피소드가 유튜브 조회수 50만 건을 넘었을 정도다. 이후 시리즈는 지난해 7편까지 승승장구하고 있다. 그의 파급력은 갈수록 커져 얼마 전 출간한 어쭙잖은 소설은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도 했다.

“역시 미국은 메릴린 먼로, 패리스 힐턴처럼 멍청한 미녀에게 열광한다”는 한 영국 평론가의 비아냥거림은 잠시 접어두자. 미 대중매체가 시시콜콜한 얘기까지 대서특필하는 현 상황을 그런 단순한 논리로 설명하긴 어렵다. 오히려 뉴스위크의 ‘웰시 판타지(Wealthy Fantasy)’가 더 설득력 있다. 변변찮은 인물이 부귀영화를 누리는 모습을 보며 자기도 그런 행운이 찾아올지 모른다고 생각하며 대리만족을 느낀다는 분석이 있다.

맞건 틀리건, 한 가지는 확실하다. 그네들의 리얼리티 방송은 호불호가 갈릴지언정 저줏거리가 되진 않는다. 쇼는 쇼고, 오락은 오락이니까. 싫으면 안 보면 그만이다. 최근 MBC 예능 ‘우리 결혼했어요’에 가상부부로 출연하는 여배우는 일상에서 누군가를 만났다고 온갖 비난에 시달렸다. 진정성이 없었단 논리다. 지난주 방송에선 눈물까지 뚝뚝 흘렸다. 그런 상황을 한 연기자의 책임으로 모는 방송 관계자들, 20대 여성에게 도를 넘어선 악담을 퍼붓는 일부 시청자들. 그들의 진정성은 도대체 뭔지 궁금하다.

정양환 문화부 기자 ray@donga.com
#킴 카다시안#타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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