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즈. 세계에서 수감자가 가장 많은 나라는? 답은 미국이다. 성인 100명당 1명 정도가 감옥에 갇혀 있다. 인구는 세계의 5%지만 수감자 수는 세계의 25%를 차지하는 ‘교도소 공화국’이다. 미국은 아동 빈곤율이 20.6%로 한국(10.5%)의 두 배고, 건강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이 국민의 15.7%인 4900만 명이다.
‘더불어 사는 삶’ 추구
미국의 어두운 면을 떠올리게 되는 건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 때문이다. 박 당선인은 최근 토마시 코즈워프스키 주한 유럽연합(EU) 대표부 대사를 만난 자리에서 “내가 좋아하는 문구가 있다”며 제러미 리프킨이 쓴 ‘유러피언 드림’의 한 구절을 들려주었다. ‘EU는 부의 축적보다 삶의 질을 중시하고 개인의 자유보다는 공동체를 앞세우며 무한 성장보다는 지속가능한 성장을 추구하기 때문에 앞으로 (아메리칸 드림을 넘어) 세계 역사를 선도해 갈 것이다.’ 이 문구를 인용한 박 당선인은 “한국이 앞으로 지향하는 방향도 이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젊은 시절 대학을 졸업하고 프랑스로 유학을 갔으니 유럽적 가치관에 익숙할 것이다. 공교롭게도 ‘유러피언 드림’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생전에 즐겨 인용하며 주변 사람들에게 권했던 책이다.
일과 여가, 경제 발전과 환경이 균형을 이루는 삶을 마다할 사람이 있을까. 지난 18대 대선 과정에서 여야 후보들을 통틀어 최고로 꼽혔던 슬로건은 민주통합당 손학규 대선 예비후보의 ‘저녁이 있는 삶’이었다. 베스트셀러 작가인 김난도 서울대 교수는 새해 트렌드로 ‘스칸디맘’이 몰려온다는 주장을 폈다. 스칸디맘이란 세계 최고의 복지제도를 가진 북유럽 국가들의 가치관, 즉 문화적 공감과 친환경적 생활을 중시하는 엄마들을 뜻하는 신조어다.
언어가 서로 다른 데다 수천 년간 끊임없이 전쟁을 벌인 유럽이 단일 정부, 단일 의회, 단일 화폐를 사용하는 공동체를 이룬 것만 해도 대단한 일이다. 말과 혈통이 같은 북한과 아직도 원수로 지내는 한국으로선 ‘더불어 사는 방법’에 관한 한 유럽 사람들에게 한 수 꿀릴 수밖에 없다. 정신병자 한 명 때문에 죄 없는 사람이 수십 명씩 죽는 사건이 잇달아도 ‘총기를 소유할 개인의 자유’를 옹호하는 미국적 가치관은 공동체를 중시하는 한국적 관념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문제는 한국 사회가 미국의 나쁜 면을 닮아간다는 것이다. 한국은 소득 상위 1%가 부(富)의 16.6%를 보유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미국(23%) 다음으로 양극화가 심하다. 자신의 이익과 욕망을 채우기 위해 남을 속이고 해치는 사람들에 대한 뉴스가 연일 나온다. 가정과 학교에서 버려진 청소년들이 거리를 헤매며 혼자 남은 노인들은 외롭게 죽어간다. 한국인의 45%가 ‘나는 하층민’이라 생각하고 58%가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는 비관에 젖어 있다.
박 당선인이 지난해 새누리당의 정강 정책을 바꿔 복지, 일자리, 경제민주화를 앞세운 것은 ‘우리 사회가 더이상 이렇게 가서는 안 된다’는 국민 정서를 읽었기 때문이다. 지도자로서 민심에 예리한 촉각을 지닌 그는 야당보다 강하게 ‘변화와 개혁’을 부르짖으며 ‘할 일은 하는 정부’를 약속했다.
설득과 조정 통해 공약 실천을
최근 박 당선인의 공약 시행 여부를 놓고 논란이 분분하다. ‘돈이 많이 드는 공약은 포기하라’는 주장부터 ‘세금을 늘려서라도 공약을 지키라’는 주장까지. 필요한 예산 규모를 정밀하게 계산하고, 비용 대비 효과를 따져 우선순위를 정하는 일은 불가피해 보인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공약을 실천하려면 박정희 대통령 때보다 진화한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과거엔 대통령이 힘으로 누르고 특혜로 매수할 수 있었다. 지금은 정부 예산을 구조조정하든, 세금을 늘리든 사회적 합의를 이루려면 끈질긴 설득과 이해 관계자 간 조정이 필요하다. 당선인의 굳은 의지 없이는 어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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