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이 이는 홍조를 띠며 자매들처럼 앉아 있다. 솨솨솨솨솨, 바람소리나 쇄쇄쇄쇄쇄, 햇빛 쏟아지는 소리 들릴 듯 섬세하게 구축된 시각 이미지들을 슬며시 내보이는 게 내가 알고 있는 노향림 시인데 이 시는 완연 다르다. 왁자지껄 소리와 함께 여러 인물이 분주히 움직인다. 마치 정지시켜 놓았던 비디오가 갑자기 움직임에 돌입한 듯이. 추억처럼 아스라하고 쓸쓸한 노향림 시 특유의 아치도 근사하지만, 이 시의 불콰하고 후끈한 현장감도 썩 근사하다.
고갱의 그림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가 문득 겹쳐지는 반라의 여인들. 그러나 처녀의 긴장이 없어 그네들은 더 평화롭고 자유롭다. 자루처럼 늘어진 가슴과 만삭인 듯 불룩한 배를 하고 있지만 다들 마찬가지니까 부끄러움도, 질투도, 불만도 없다. 아이를 배고 낳고 기르고, 자기 몫의 ‘지루하고 비루한 일상을’ 살아내느라 삭신이 쑤시는 여인네들이 모처럼 편안하게 수다를 떨며 해수찜을 즐기는, 떳떳한 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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