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로 위장한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은 나날이 진화하는 북한의 대남 공작에 비해 우리 공안기관의 대공(對共) 시스템이 한심할 정도로 부실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북한 화교 출신인 유모 씨는 탈북자로 위장해 입국한 뒤 2011년 6월부터 서울시 계약직 공무원으로 근무했다. 국가정보원은 합동신문 과정에서 유 씨의 거짓말에 속아 넘어갔고, 검찰과 기무사는 화교라는 제보를 받고 내사했지만 그의 정체를 밝혀내지 못했다. 유 씨는 2008년 26억 원을 환치기 수법으로 중국에 보내려다 서울동부지검의 조사를 받았으나 별다른 처벌을 받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원 검찰 기무사가 줄줄이 신분을 속인 탈북자에게 농락당한 것이다.
유 씨는 서울시에 살고 있는 탈북자 명단과 한국 사회 정착에 관련된 정보를 북한에 넘겨준 혐의로 뒤늦게 검거됐다. 공안당국이 눈을 감고 있지 않았다면 위장 탈북자가 1년 6개월 넘게 서울시 공무원 신분으로 간첩활동을 하는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재발 방지를 위해서라도 유 씨가 어느 단계에서 북한에 포섭돼 간첩활동을 시작했는지 규명해 관련자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
북한은 과거에는 주민의 이탈을 감추느라 ‘탈북자’라는 단어조차 쓰지 못하게 했지만 김정은 등장 이후 남한에 정착해 살던 탈북자를 재입북시켜 체제 선전에 이용하고 있다. 탈북자 박정숙 씨는 지난해 6월, 김광혁 고정남 부부는 지난해 11월 평양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썩어빠진 남조선 사회에서 도저히 살 수 없어 자진 월북했다”고 거짓 주장을 늘어놓았다. 북한은 북에 남아 있는 가족을 처벌하겠다고 협박해 박 씨 등을 재(再)입북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남한에서 성공했거나 반북(反北) 활동을 하고 있는 탈북자들을 살해하려는 시도를 계속하고 있다. 고인이 된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와 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에 대한 살해 기도가 대표적이다. 탈북자로 위장한 간첩도 끊임없이 내려 보내고 있다. 북한이 국내에 입국한 2만4000명의 탈북자를 이용해 남한 사회를 혼란에 빠뜨리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있는 것이다.
탈북자들은 자유를 찾아 목숨을 걸고 국내로 들어왔다. 이번 사건으로 전체 탈북자를 색안경을 끼고 보는 것은 그들의 가슴에 못을 박는 일이다. 북한 공작을 무력화하기 위해서라도 열린 마음으로 탈북자를 포용하고 정착을 도와야 한다. 탈북자의 신원과 거주지를 포함한 개인정보를 철저히 보호해 탈북자들이 북한의 보복 책동에 희생되지 않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 탈북자들도 수상한 사람을 적극 신고해 북한 공작이 끼어들 틈을 주지 말아야 한다.